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흐르는 겨울 (12-18-수, 맑음) 본문
날이 무척 추워졌다. 환기를 위해 문을 열자 찬 겨울바람이 기회를 엿보던 침입자처럼 순식간에 방 안에 들어찼다. 밤새 가라앉았던 방 공기가 깜짝 놀라며 들어온 바람과 얼떨결에 섞였다. 상쾌했다. 2중 창문 중 안쪽 창에 성에가 되지 못한 물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손으로 쓸어내리니 물이 주르르 아래로 흘렀다. 커튼을 건드리자 포르르 먼지가 날렸다.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커튼을 떼어내자, 커튼에 가려졌던 창문의 맨얼굴이 환히 드러났다. 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에 책상과 책꽂이, 각종 모니터에 쌓인 먼지들도 덩달아 긴장했다.
날은 흐리지 않았다. 운동하기 위해 실내 자전거에 올라가 페달을 밟을 때 작은누나가 귤을 한 상자 들고 들어왔다. 점심은 채소와 과일만 먹었을 뿐 정제 탄수화물은 먹지 않았다. 그리고 종일 집에만 있었다. 택배 문자 서너 개와 은준의 전화 한 통 받았던 단조로운 하루였다.
은준이 전화한 이유, 나는 내일 모레 금요일, 후배 시인들인 영욱, 병국과 만나기로 했는데, 은준은 그 자리에 혹시 O도 참석하게 될까 봐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오래전 사소한 오해로 인해 영욱과의 사이가 어색해졌던 은준으로서는 만에 하나 O가 술기운에 자신(은준)의 이야기를 영욱에게 할까 봐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형도 알다시피 O 그놈은 철딱서니 없다니까요. 악의가 없다는 건 알지만, 시시콜콜한 모든 얘기를 술자리에서 해버린다니까요.” 했다. 그건 맞는 말이긴 하다. 그가 착하긴 한데, 그래서(너무 착하기 때문)일까, O는 ‘보안 의식’(?)이 없다.
친한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O는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누군가의 비밀을 일행들과 공유하곤 한다. 나도 그 피해자(?) 중의 한사람이다. 오래전, O는 내가 호감을 갖고 있던 사람을 만나, (내 허락도 없이) 내 연심(戀心)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지나친 오지랖이었다. 당시 정색하고 주의를 주긴 했지만, 너무 황당해서 한동안 화가 풀리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내가 때 묻은 건지 O가 철없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폐암 검사를 위해 찍었던 CT 결과가 나왔다. 폐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했다. 40년 흡연자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결과지 담당 의사 소견란에는 ‘관상동맥 화석화’의 징후가 있으니 심혈관계 전문의와 상담해 보라는 내용도 쓰여 있었다. 관상동맥은 심장에 피를 전달하는 혈관인데 이 혈관이 딱딱해지면 동맥경화가 되고, 그걸 더 방치하면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도 쓰여 있었다. 그러면서 혈압과 고지혈의 관리와 금연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는데, 나는 이미 다 관리를 받고 있고 금연 또한 2년째 계속하고 있다. 이번 달 27일, 촬영 영상 결과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담당 의사와 상담하기로 예약되어 있으니, 그날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후드티나 티셔츠 색상과도 어울릴 수 있는 검은색 파카가 하나쯤 있어야 할 거 같아서 노스페이스 오리털 파카를 27만 원에 구매했다. (이월 상품이라서 5% 할인해 주었는데도 너무 비싸다) 하도 종류가 많아서 맘에 드는 디자인과 크기를 선택하기 위해 한 시간은 고민(검색)했던 것 같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배들을 만나다 (12-20-금, 흐리고 저녁에 눈, 비) (1) | 2024.12.20 |
---|---|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다 (12-19-목, 맑음) (1) | 2024.12.19 |
겨울이 끝나기 전, 반드시! (12-17-화, 흐렸다 맑음) (2) | 2024.12.17 |
그럼에도 불구하고 (12-16-월, 가끔 눈발) (0) | 2024.12.16 |
탄핵 (소추안) 가결 축하 번개 (12-15-일, 맑음) (1) | 2024.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