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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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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제물포 블루스 (10-24-화, 맑음)

달빛사랑 2023. 10. 24. 22:16

 

보운 형과 함께 퇴근하면서 문득 고기가 먹고 싶었다. 저녁시간이라 허기도 졌고, 잇몸뼈가 어느 정도 아물자 옛날 버릇이 도진 것이기도 하다. 만약 고기를 먹을 거라면 일단 누군가에게 연락해야 했다. 고기는 혼자 먹기 참 어려운 음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보운 형이 부평 고깃집으로 옛 지엠 동지들 만나러 고 간다는 말만 안 했어도 꾹 참았을 것이다. (이건 치사한 변명!) 하지만 길고 긴 시청역 지하철 승강장까지 내려와서, 심지어 전동차가 막 도착해 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는데도 귀가를 망설이며 혁재에게 연락했다. 통화되지 않았다. 꿩 대신 닭이라라는 마음으로, 다시 은준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연결이 되었다. 송내에서 볼일 보고 귀가 중이라고 했다. 전동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고, 막 간석역을 지나고 있었다. 제물포에서 보기로 하고 건너편 승강장으로 가서 (환승을 위해) 주안행 전철을 탔다. 집요함 혹은 욕망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제물포역에 도착해서 병균에게도 연락했다.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기 때문에 연락했던 것인데, 하필 오늘 그는 재단 공모 사업인 시민연극 교육을 위해 주안을 가야 했다. 전화를 끊고 역사를 나가자 은준이 횡단보도를 건너오고 있었다.

 

일단 고기를 먹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역사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닭갈빗집을 추천했다. 오래전에 나도 가봤던 곳이다. 그때는 미녀 사장님이 손수 갈비를 구워주었다. 이제 그녀는 본업인 무용 공부하기 위해 식당을 그만두었고 현재는 그녀의 오빠가 운영하고 있었다. 맛은 여전했다. 우리는 창가에 앉아 넓은 창문을 활짝 열고 닭갈비 안주에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최근 시인이 되기 위해 시 공부하고 있는 은준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겉멋을 경계하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다분히 신원주의에 경도될 위험이 많은 친구라서 각별히 강조했던 것이다. 오늘도 시종일관 시인과 작가들의 출신학교와 등단 매체로 등급을 매기려 해서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는데, 이 문제는 사실 그 친구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모든 글쟁이들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면 싸구려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아무튼 그곳에서 소주  1병씩 마시고 2차로 은준의 집 방향에 있는 이자카야에 들렀다. 깔끔하고 안주도 괜찮은 집이었다. 다만 가격이 비싸서 자주 갈 집은 아니었다. 일본술집에 들렀지만 우리는 소주를 마셨다. 그곳에서도 각자 1병씩 마셨다. 이전 주량에 비하면 병아리 눈물 만큼의 술이었지만, 은준은 약간 피곤해 하는 것 같았다. 술이 떨어지고 안주가 남아 한 병을 더 시킬까 하다가 그냥 남은 안주만 집어먹고 술집을 나왔다. 술집 앞이 바로 정거장이라 은준의 배웅을 받으며 15번 버스에 올랐다. 제물포 역시 구도심의 쓸쓸함과 스산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하지만 교통이 편리해서 집값만 적당하다면 이사할 용의가 있다. 무엇보다 수봉산 산책로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리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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