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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한글날 공휴일 (10-9-월, 흐림) 본문

일상

한글날 공휴일 (10-9-월, 흐림)

달빛사랑 2023. 10. 9. 20:46

선배 신현수 시인의 작품

 

오전에 잠깐 빗방울 날렸다. 바람은 소슬했으나 추위를 느낄 만큼은 아니었다. 잇몸 수술 부위가 좀처럼 아물지 않아서 음식을 씹을 때마다 아팠다. 집에 있던 스테로이드제 알약 소론도정 세 개를 한꺼번에 먹었다. 임시 치아를 빼고 있으면 금방 아물 텐데, 식사를 하거나 외출할 때마다 임시 치아를 끼게 되고, 그것이 수술 부위를 압박하니 더디게 아무는 것 같다. 원장도 그렇게 말했다. "아, 이거 참 딜레마네요. 임시 치아가 잇몸과 압착이 잘 되는 건 좋은 일인데, 너무 압착이 잘 되다 보니 상처 부위가 눌리고, 그러면 아프고, 상처는 더디 아물고..... 음..... 어쩌나" 하면서 그녀는 임시 치아를 오래 손 봐서 가능한 한 통증을 줄여주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아무튼 소론도정은  지난달 임플란트 수술 때 처방받은 약인데, 스테로이드 성분은 혈당을 심하게 올리기 때문에 먹지 않고 남겨놓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식후 혈당은 종일 높게 측정되었다. 운동을 해도 떨어지질 않았다. 검색에 의하면 소론도 정을 복약했을 경우 48시간이 지나야 정상 혈당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다행히 통증은 오후가 되면서 현저하게 완화되었다. 스테로이드제는 정말 부작용도 많지만 효과 또한 확실한 양날의 칼과 같다. 통증이 완화되니 술 생각이 간절했다. 혁재를 불러내 소주 한잔할까 하는 생각이 봇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럴 때, 후배 은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예상대로 한 시간 가까이 통화했다. 은준의 통화는 그저 자신의 일상사를 넋두리처럼 풀어놓거나 이전에 했던 말을 반복하기 일쑤여서 '이 녀석의 전화를 어느 시점에 부드럽게 끊을 수 있을까'하고 항상 속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오늘은 통화하다가 문득 '이 녀석이라도 오라고 해서 동네 근처에서 소주 한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냐?" 하고 묻기까지 했다. 그 물음에서 더 나아가 "소주 한잔할까?" 했다면 그는 분명 "좋지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비'를 잘 넘기고 꾹 참았다. 통증 때문에 혈당 관리에 안 좋은 스테로이드제까지 먹은 마당에 술을 마시면 아무래도 수술 부위가 더디 아물게 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고비(유혹이라고 불러도 무방한)를 넘기고 나면 스스로 대견하다. 오늘은 낮잠을 자지 않았으니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하긴 낮잠을 자도 11시면 잠이 쏟아지긴 하지만. 그리고 새벽녘에 잠이 깨고.... 할아버지 다 됐다. 


그래도 한글날인데, 내가 시를 쓰거나 읽고 싶은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도 다 모국어인 한글이 있기 때문이니, 고마운 한글에게 꾸벅 절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괄시받고 훼손되고 상처받기 일쑤인 한글에게 글쟁이로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크다.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언어를 모국어로 가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자랑거리인지 왜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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