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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지난 밤의 술자리를 복기하며 본문

일상

지난 밤의 술자리를 복기하며

달빛사랑 2021. 5. 4. 00:22

 

 

어제 문일 형, 광석, 혁재와 더불어 마신 술이 제법 얼큰했다. 퇴근하며 들른 갈매기에서 혁재와 문일 형, 광석이를 만났다. 아마 문일 형과 광석이가 다른 곳에서 1차를 하고 2차를 하기 위해 갈매기에 들렀다가 혁재를 만났을 것이다. 문일 형은 절대로 갈매기에서 1차를 하지 않는다. 또 문일 형은 절대로 1차에서 술자리를 끝내지 않는다. 다행스럽게 다른 날보다 덜 취해 보였다. 합석하라는 눈짓을 보냈으나 나는 웃으며 거절하고 내 지정석(?)에 앉아서 혼자 막걸리를 마셨다. 혁재는 화장실 갔다 올 때마다 내 자리에 앉았다 갔다. 두 번째 들렀을 때 혁재는 “형, 조금만 기다려요. 형하고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해 놨어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문일 형과 마시라고 말은 했지만, 혁재가 빨리 내 자리에 앉길 바랐다. 혼자 술 마시는 게 적적해서가 아니라 문일 형이 과음하면 여러 사람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문일 형 쪽 테이블을 슬쩍 보니까 한참 전에 시킨 술이 그대로 있었다. 술자리가 길어질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종우 형을 불러 “문일 형 술값 얼마 나왔어요. 내가 계산할게요.” 했더니, 형은 “오, 그래요? 3만 8천 원. 문일 형은 무슨 복이야. 이렇게 후배들이 챙겨주니.” 하며 “혁재가 저 자리에서 먹은 막걸리 두 병은 어떻게 할까?” 하고 물었다. “아, 그것까지 함께 계산해 주세요.” 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던 광석이가 그것을 보고 문일 형에게 말한 모양이다. 문일 형은 내 쪽을 보며 큰소리로 “왜 건방지게 술값을 계산하고 지랄이야.”라며 눈을 부라렸지만 이내 “고마워. 잘 먹었어.”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건 진심이었을 것이다. 형은 후배들과 술을 마실 경우, 절대로 후배들이 계산하도록 하질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돈을 벌고 있으니 때때로 형의 술값을 계산해 주려고 한다.

 

그러나 어제 그 무엇보다 감격스러웠던 것은, 늘 취하면 후배들에게 업혀 귀가하곤 하던 형이 오늘은 자가 스스로 슬며시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귀가했다는 것이다. 늘 수발을 담당하던 광석이조차 형이 간 걸 몰랐던 것 같다. 근 5년 사이에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술이 많이 약해져서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든, 후배들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여온 그간의 모습에 대한 자책 때문이든 스스로 걸어서 혹은 택시를 잡아타고 귀가한 것은 여간 고무적인 일이 아니다. 광석이도 큰 부담 하나를 떨어 버린 듯 표정이 밝아졌다. 정작 취한 건 혁재였다. 최근 혁재는 무척이나 술이 약해졌다. 어제도 술자리를 마무리할 때까지 혁재의 인생철학 이야기(사실은 주정이지만)를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야 했다. 뭐 그렇다고 패악을 부리는 주정은 아니고 되지 않는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벅벅 우기는 게 전부다. 나나 종우 형이나 혁재의 급진적인(터무니 없는) 종교론과 인생론이 펼쳐질 때쯤이면 눈빛을 교환한다. “이놈 취했어.”라는 걸 확인하는 눈빛이다. 광석이와 나는 전철을 탔고 혁재는 걸어간다며 문학 역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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