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드라마 <빈센조> 유감 본문
며칠 후면 어버이날이고 또 몇 주 후면 5.18광주민중항쟁 기념일이다. 아프고 쓰린 시간이 첩첩이 기다리고 있다. 거리마다 가게마다 색색이 진열된 카네이션을 볼 때마다 아버지와 엄마가 생각나 속절없이 눈물 쏟겠네.
숙취에 시달리며 하루를 보냈다. 저녁에는 다크 히어로가 등장하는 드라마 <빈센조>를 시청했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 판타지였다. 악덕 재벌, 재벌과 결탁한 판사, 검사 등의 사법 적폐들, 그리고 그들을 비호하는 고위 정치인 등 악의 카르텔이 한국계 이탈리아 마피아 중간 보스 ‘빈센조’에 의해 처절하게 응징되는 줄거리는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조각 같은 외모, 출중한 격투 실력, 한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돈과 화려한 장비, 완벽한 매너를 장착한 빈센조는 비루한 현실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시민의 바람이 투영된 가상의 영웅이다. 그는 현실에서 시민이 증오하거나 적대하는 권력의 심장부에 가공할 응징의 화살을 날린다. 빗나가는 법도 거의 없다. 시청자들은 그때마다 환호한다. 이 드라마는 시원하지만 그래서 위험하다. 드라마 속 빈센조의 처절한 응징, 복수는 시청자의 분노를 부추김으로써 정당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그 ‘복수’는 가상의 복수일 뿐이지 현실에서의 문제해결이 아니다. 시청자들은 허구적인 복수를 통해서 현실에서의 문제해결 의지를 희석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실천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더욱 자극적인 판타지에 기대 그것에 위로받고 문제의 본질을 잊고 산다. 물론 답답한 현실에서 이러한 정서적 배설과 대리만족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제도 가끔 필요할 때가 있다. 다만 그것은 고통스런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몰핀이 필요한 것처럼 제한된 경우나 현실에 대한 냉정한 시각을 잃지 않을 때만 유효하다. 위급한 경우가 아닌데, 몰핀을 찾는다면 그것은 마약에 중독된 중독자에 다름아니다. 판타지 영화나 드라마 속 영웅은 자신의 문제를 힘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지만, 현실 속 범인(凡人)은 그럴 수 없다. 냉철한 현실 감각과 비판적 사고가 전제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현실과 허구를 착각하거나 현실 감각을 잃고 상실과 허무의 사막을 떠도는 유령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타 방송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모범택시> 역시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악인들을 법이 아닌 폭력적인 방법으로 응징하는 복수극 범주의 드라마다. 요즘 이러한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서민의 삶이 팍팍하기 때문이고 현실을 그렇게 만드는 대상에 대한 상실감과 분노가 시나브로 증폭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어떤 경우에는 확실히 법보다 주먹이 악인에겐 효과적이다. 악인들은 법조차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와 자본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 방식 역시 잠시 통쾌함을 줄 수는 있지만 올바른 해결 방식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위험에 빠뜨린다. 폭력은 가장 원초적인 통쾌함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 역시 <빈센조>와 마찬가지로 판타지일 뿐이다. 악인을 악인의 방식으로 응징하는 건 항상 위험하다. 최악과 차악을 구분하는 주체는 누구란 말인가. 자신의 기호와 이해관계가 그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분풀이일 뿐이지 정의의 실현은 결코 아니다. 절대악도 절대선도 현실에서는 없다.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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