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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메이 데이 본문

일상

메이 데이

달빛사랑 2021. 5. 1. 00:15

어제 K형과 혁재가 집에 왔었다. 갈매기부터 이어진 술자리의 연장이었다. 술자리의 시초는 심형진 선배의 전화로부터 비롯되었다. 퇴근 무렵 심 선배가 갈매기로 오라며 전화를 했고, 날씨도 우중충한데다 금요일이어서 제안을 수락했다. 곧이어 혁재도 합석했다. 늘 그렇듯 약속한 건 아니고 우연히 만났다. 우연히 만났을 때 반가움은 두 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5.3항쟁 관련 학술대회를 마친 창수 형이 전화를 걸었다. 어디냐고 물었고 갈매기라고 대답했다. “그래? 그러면 거기 있어라. 내가 그리로 갈게.”하고 전화를 끊은 K형은 정확히 30분쯤 지나서 예정에 없던 세 사람을 몰고 갈매기에 도착했다. 함께 온 사람은 L형, W형, 이전 민중연합 동료였던 J였다. J는 이미 술에 취한 듯 얼굴이 불콰했다. L형을 본 심 선배는 “저 형 만나면 술자리가 길어져.” 하고 술값을 계산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아니나 다를까 J는 선배들에게 주사를 부리다 종우 형에 의해서 술집에서 쫓겨났다. 그 친구만 보면 마음이 무겁다. 연민과 경멸이 교차하는 묘한 감정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친구지만, 지금은 깡마를 체구에 자존심만 남아서 툭하면 남들과 시비를 벌인다. 경제력이 없어서 자식들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하지만 옛 동료로서의 연민과 그가 벌이는 행패를 견디는 건 다른 문제다. L형은 어제도 취해서 스스로 귀가하지 못하고 ‘배달’을 부탁했다. ‘배달’이란, 자신은 혼자 집에 갈 형편이 못 되니 집 안까지 데려다 달라는 뜻이다. 형의 ‘배달’ 요구는 일종의 버릇이란 생각이 들어서 미안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대신 착한 혁재가 그 일을 대신했다. 창수 형이 혀를 차며 혁재에게 택시비를 주었다. ‘배달’을 마치고 40여 분 뒤에야 혁재는 돌아왔다. 그리고 한 시간쯤 더 있다가 갈매기에서 나와 우리 집으로 온 것이다.

 

K형은 새로운 문화조직을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느슨한 조직이 아니라 사투도 불사할 수 있는, 정치적 성격이 명확한 조직일 거라고도 하면서 기존의 조직이 범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열거했다. 나는 문제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칼날은 ‘우리’도 피해갈 수는 없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정치적 성격이 강조된 문화예술조직은 자칫 진영 내 또 다른 조직 하나 보태는 것이나 같지 않겠느냐고 질문했다. 형은 당연히 그런 것이고, 진영의 색채를 의도적으로 띨 생각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상대가 문화와 예술의 외피 뒤에서 지나치게 몰염치, 비논리적 정치공세를 펴고 있는데, ‘우리’는 그동안 너무 수세적인 모습을 보여왔거나 일사불란하지 못했으므로 전선을 좀 더 명확하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오해의 우려는 있지만,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하지만 뜻밖이었다. 속 시원한 말이었지만 응전의 방식이 너무 일차원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언제부터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후배들이 그런 문제의식으로 조직 건설을 제안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속으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 나눈 이야기라서 형의 말을 오해하거나 이해가 미진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헤어지기 전, “형, 제발 후배들에게 휘둘리지는 마세요.”라는 말을 했고, 형은 “당연하지. 계봉아, 걱정하지 마라. 나 알잖아?”라고 대답했다. 걱정할 일이 없길 바랄 뿐이지만, 자꾸만 걱정할 일이 생길 것만 같다. 다만 교활하게도 나는 “옛날처럼 집문서 갖다 드릴 만큼 적극적으로 함께 하지는 못해도 응원할게요. 도울 수 있는 거 있으면 돕고요.”라며 한 발 슬쩍 빼겠다는 의사를 넌지시 전했다.


시립극단 후배 강이 오랜만에 연락해 와 오늘도 갈매기 행! 혁재와 더불어 셋이 만났다. 처음에는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덜 깨서 도저히 못 나가겠다고 거절했으나, 혁재가 홍어튀김 사진을 보내며 나오라고 채근해서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갔다. 게다가 비가 너무 예쁘게 내렸다. 다행히 후배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컨디션이 돌아왔다. 8시가 넘자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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