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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어젯밤 내린 비로 가을은 더욱 깊어지고 본문

일상

어젯밤 내린 비로 가을은 더욱 깊어지고

달빛사랑 2020. 10. 3. 17:28

 

어제 갈매기에서 술 마시고 나올 때 가을비가 기분 좋게 내렸다. 종우 형이 챙겨준 우산 위로 빗방울 소리가 음악처럼 들렸다. 그 소리가 너무 좋아 택시를 타지 않고 전철역까지 걸어가서 전철을 타고 왔다. 카디건을 벗었는데도 비 오는 밤공기가 차지 않았다. 카디건을 벗어서 가방 안에 넣었는데도 서늘하지 않았다. 가을비를 맞으며 밤길을 걷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밤과 비와 적당한 술기운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묘한 감상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오늘도 비가 올 것처럼 종일 날씨가 궂었지만 끝내 비는 오지 않았다. 빨래를 내다 걸었다가 비가 올까 봐 안으로 들였는데 그냥 놔둬도 될 걸 그랬다. 흐린 하늘 아래로 까불며 불던 바람이 상쾌했다. 바람 속에서 가을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갈 거라는 가을의 다짐이 견결하게 느껴지는 바람이었다. 문득 오래전 캠퍼스의 가을이 떠올랐다. 은행이 익어가던 캠퍼스의 가을은 무척 아름다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던 은행잎은 흡사 황금색 부채 같았다. 그것을 밟고 걷던 그 시절의 나도 아름다웠을 것이다.


아이가 왔다 돌아간 이후 엄마의 마음속 가을도 깊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자주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거나 테라스에 나가 의자에 앉아서 말없이 하늘만 올려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몇 번의 가을을 더 맞을 수 있을지를 타산하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명절이 끝난 뒤에는 쓸쓸한 시간이 찾아든다. 왁자지껄한 축제가 끝난 뒤도 마찬가지다. 흥분됐던 마음이 평정을 찾아가는 과정은 가끔 모질고 냉혹하다. 소란함과 흥분된 마음을 상쇄해줄 고즈넉함은 대개 쓸쓸함의 옷을 입고 찾아든다. 노인들의 경우는 자신의 말년의 비애와 그 쓸쓸함이 버무려져 더욱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힘든 일이다. 가을은 점점 깊어가는데, 그 쓸쓸한 심연으로부터 엄마를 건져 올려 일상의 마음을 회복하게 해주는 일은 정말 정말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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