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감사할 게 많은 올 추석 본문
아침에 아들이 자기 차를 몰고 엄마와 나를 태우러 왔다. 어젯밤 늦게 숙부(내 동생) 집에 도착해서 사촌 동생들과 놀다가 자고 오늘 아침 나와 엄마(할머니)를 모시러 온 것이다. 손자가 운전하는 차를 탄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20대가 타기에는 무척 큰 차였다. 자동운전시스템이 놀라웠다. 요즘 차들은 모두 그렇게 고급스럽게 출고되는 모양이었다. 부모 맘고생 시키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자신이 번 돈으로 그럴듯한 차를 사서 타고 다니니 부모로서는 대견할 수밖에.
우리 가족과 동생 가족 7명이 조촐하게 추모예배를 드렸다. 찬송가는 스마트 텔레비전에서 유튜브를 실행하여 큰 화면으로 함께 보며 불렀다. 바야흐로 가족예배에도 아이티 기술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평소 예배 내내 눈만 껌뻑거리던 20대인 아들과 조카들도 흥미를 보였다. 뭔가 예배가 ‘젊어졌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앞으로도 인터넷과 블루투스를 활용한 예배를 고민해 봐야겠다. 그리고 아이들끼리 협의해서 예배 전 과정을 진행해 보라고 종용해볼 생각이다. 까다로운 유교식 제사상을 차리지 않고 간단하게 기독교식 예배로 차례를 대신하는 건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긴 나 역시 아버지로부터 유교식 제사 절차를 전혀 배운 바가 없다. 배우지도 않은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했다면 나나 아이들이나 무척 피곤했을 것이다.
점심 때쯤 아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코로나 때문에 외가에 갈 일 없는 아이는 다른 명절 때와는 달리 오늘 밤도 인천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가장 반긴 것은 당연히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식탁에 앉아 손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과일 줄까?” 혹은 “왜? 출출해?” 하시면서 지극정성으로 수발을 드셨다. 나는 은근 샘도 나고 우습기도 해서 “엄마, 수현이도 낼모레 서른이에요.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알아서 다 할 나이에요.” 했지만, 엄마는 내 말을 콧등으로도 안 들었다. 수현이에 대한 엄마의 마음은 대견함과 안타까움, 사랑과 그리움이 뒤엉킨 마음이었을 것이다.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 “할머니가 앞으로 얼마나 더 수현이에게 이렇게 해줄 수 있겠어.” 문득 처연해지고 쓸쓸해지는 말이다. 그때마다 수현이는 “할머니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100살 드셨을 때 그 말씀 다시 해주세요.” 하며 제법 대견한 말로 웃으며 대응하곤 했다. 그나저나 소파에 누워 누군가와 종일 카톡을 주고받는 걸 보니 애인이 생긴 모양인데, 내가 물어도 별 대답은 없었다.
보름달은 날이 흐려 보지 못했다. 빌 소원은 하도 뻔해서 하나님도 달님도 이미 알고 있을 거다. 작년의 소망과 올해의 소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올해는 나에게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고, 원하는 일들을 대개는 성취했다. 보름달이 떴다면 소원을 빌기 전에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을 것이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더욱 흥겨웠을 명절이지만, 그래도 ‘이나마’의 명절을 보낼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와 보살핌 때문일 것이다. 감사할 일이 많은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올 한가위 같은 날들만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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