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신기시장에서 혁재를 만나다 본문
연휴 첫날, 추석 추도예배 순서지를 복사해놓고 무료하게 영화를 보고 있을 때, 후배 혁재로부터 연락이 왔다. 혁재도 제사 준비를 마치고 제상(祭床)에 올릴 음식 하나가 빠져서 그걸 사러 나왔다가 연락을 한 거다. 처음에는 “구월동 나왔어요.”라는 말만 듣고 갈매기로 갔더니 혁재는 없었다. 알고 보니 구월동 홈플러스에 왔다가 물건을 사고 들어가는 길에 신기시장 실내포장마차 ‘이쁜네’에 들러 막걸리 한잔하다가 연락한 것이다. 갈매기에서 택시를 타고 이쁜네로 갔다. 혁재는 굴비 한 접시를 시켜놓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사장님이 나를 보고 반갑게 맞아줬다. 술집에는 우리 말고 한 팀이 더 있었다. 재래시장이지만 추석 전야 시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굴비를 다 먹고 혁재는 회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우럭회를 주문했다. 생선은 무척 신선하고 쫄깃했다. “가장 큰 걸로 잡았어”라고 말하는 여사장님의 말에서 단골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가 느껴졌다.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막걸리 네 병을 마시며 기분좋게 수다를 떨었다.
술집을 나서며 혁재는 “형, 내가 근처에 괜찮은 술집 하나 발견했어요. 집에 가는 길에 좀 술이 모자르다 싶을 때 들르는 곳인데, 간장으로 간을 한 우무와 우엉 볶음을 기본안주로 주는데 그게 꽤 맛있어요. 거기 가서 한 잔만 딱 더 할래요?” 했다. 마다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신기시장에서 학익동 넘어가는 언덕 중턱에 술집은 있었다.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기본안주가 맘에 들어 찾아온 것이라서 주 안주로는 닭똥집을 시켰다. 질겨서 평소에 먹지도 않는 안주인데, 그 가게에서 가장 쌌다. 닭똥집은 예상한 그대로의 맛이었고 우무와 우엉볶음은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그곳을 다시 갈 생각은 별로 없다. 혁재야 귀가하다가 만나는 집 근처 술집이라지만 내가 우엉볶음 하나를 먹으려고 그곳까지 찾아갈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사실 맛보다는 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었던 혁재와 나의 마음과 실제로 술이 2% 부족했던 술꾼들의 욕망이 뒤엉켜 찾아간 술집이기도 하고. 그곳에서 막걸리 한 병씩 마시고 혁재가 잡아준 택시를 타고 먼저 돌아왔다. 명절 전날, 좋은 추억 하나 또 만들었다. 기분좋다.
안동에 내려가 있는 안상학 시인과 연락이 닿아 안부를 나눴다. 혁재도 아는 시인이라서 함께 인사를 드렸다. 혁재에게 최근 발간한 시집을 보내주겠다고 해서 주소를 보내줬다. 참 따듯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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