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구월동은 확실히 좁은 동네라니까 본문
창수 형을 만났다. 인천학연구원을 정년퇴직하고 평생 처음으로 여유를 갖게 된 형은 오히려 그 ‘여유’를 낯설어했다.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등산을 하고, 사 놓고 읽지 못한 책을 읽거나 보고서가 아닌,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소일을 했는데, 그것으로도 ‘낯선 여유’가 채워지지 않았다. 늦게 잠을 청해도 출근하던 시간에 어김없이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곤 했다. 몸에 밴 습관은 힘이 센 법이니까. 그래서 최근에는 지방을 돌면서 여행을 하고 못 만났던 지인들을 만나고 왔다. 고향 안동을 거쳐 대구를 방문했고, 강원도 영월에 들러 후배를 만났다. 영월 후배는 형에게 담금주 한 병을 선물로 주었는데, 그 술을 내게 주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갈매기에서 만나 형의 여행담을 들었다. 후배 동윤이가 합석을 했다. 최근 동윤이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얼핏 듣기에는 전망이 매우 밝았다. 그가 영업하고 있는 상품은 팬데믹 이후 더욱 필요성이 점증한 비대면 회의 솔루션 프로그램이었다. 갑자기 시작한 일이 아니라 몇 년간 후배들과 착실히 준비한 모양이었다. 부지런한 후배다. 정말 오랜만에 셋이서 즐겁게 대화했고 맛있게 술 마셨다. 광석이가 합석했다. 약간 불편했다. 사람이 불편한 게 아니라 '우리끼리만 통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갑자기 멈춰야 하는 상횡이 불편했던 것이다.
일어나야 할 때쯤 인천일보 여 모 선배가 후배 기자와 들어왔다. 선배는 갑자기 우울한 표정이 되어 자신은 이제 문화부장이 아니며, 계양구청인가 어딘가를 출입하는 출입 기자로 발령이 났다고 말했다. 같이 온 여자 후배를, 새로운 문화부장이라며 나에게 소개했다. 명함을 받았지만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여 선배를 비롯해 동석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녀를 모를 수 있어?’ 하는 표정을 지은 것으로 보아 지역언론계에선 제법 유명한 기자인 모양이다. 연락처를 주고받느라 내 이름을 밝히자, "아, 문 선생님. 반갑습니다." 하며 하는 체를 했다. 실제로 그녀는 나를 (이름으로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사람은 차분하고 깊어 보였다.
사실 몇 년 전까지 인천일보와 민예총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 소원했는데, 여 선배가 인천일보에 가면서 민예총은 물론 주변의 진보적인 예술인들의 소식들도 인천일보에 게재되기 시작했다. 여 선배는 인천 문화예술인들에게는 무척 고마운 기자다. 어쩌다 문화부가 아닌 사회부로 가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확한 사정을 모르니 함부로 예단할 수 없지만, 외부인인 나에게도 이번 발령은 큰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근처 ‘경희네’로 2차를 갔다. 그곳에서는 경인일보 사람들을 만났다. 사장이었던 박영복 선배, 현재 사업본부장인 우수홍 선배, 시 대변인으로 가게 되어 최근 사표를 낸 후배 정진오 편집국장 등이 술 마시고 있었다. 그들과 합석해서 소주를 마셨다. 주종을 바꿔 마셔 그런지 갑자기 취기가 느껴졌다. 영복 선배가 먼저 가시고 잠시 후 나도 먼저 일어나 술집을 나왔다. 전철 막차 시간은 한참 남았지만 오랜만에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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