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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문화재단 이사회ㅣ문화현장 편집회의ㅣ그리고 장맛비 본문

일상

문화재단 이사회ㅣ문화현장 편집회의ㅣ그리고 장맛비

달빛사랑 2020. 7. 13. 20:27

 

 

종일 비 내렸다. 10시 30분, 재단에서는 이사회가 열렸고, 회의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쟁점이 될 만한 안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추경 예산을 심의했고 차기 이사 선출을 위한 추천위원회가 구성됐다. 나도 추천위원 중 한 명으로 선임되었다. 재단을 위한 마지막 봉사가 될 듯하다. 이번만큼은 별다른 잡음 없이 ‘될 만한 사람들’로 이사회가 구성되었으면 좋겠다. 4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사로 활동을 하다 보니 이제야 비로소 재단의 시스템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동안 서너 명의 직원이 전적으로 자의가 아닌 이유로 퇴사를 했고 대표이사도 바뀌었으며 조직 체계도 달라졌다. 혁신위원회가 설치되어 재단 사업 전반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모든 구성원은 각자의 일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활동이 종종 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게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밖에서 바라볼 때는 아쉬운 것만 눈에 들어왔는데 안에서 겪어 보니 그런 시선들이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힌 시선인지도 또한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재단의 입장이 되어 직원들의 활동을 변호하고 있었다. 비상임 이사지만 재단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의 구성원으로서 일정한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올 11월이면 임기가 끝난다. 홀가분함과 아쉬움이 반반씩이다. 하지만 인천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지속하는 한 나는 재단을 향한 관심과 애정을 놓지 않을 것이다. 재단은 바로 인천 시민의 것이자 그 활동의 결과물은 인천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계속 비가 기분 좋게 내렸다. 보슬보슬 내린 것이 아니라 주룩주룩!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이사들과 점심을 마치고 두 시쯤 민예총 사무실에 들렀다. 다섯 시에 편집회의가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 시간까지는 세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교육청 정책특보 서류를 준비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계약직이긴 하지만 5급직 공무원이다 보니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만만치가 않았다. 일단 민예총과 작가회의 활동을 정리한 경력증명서를 만들어 직인을 받았다. 응시 자격 요건 중에 법인이나 관공서 근무 경력이 대학 졸업 후 5년 이상이어야 한다는 항목이 있어서 일단 법인인 민예총과 작가회의 근무 경력을 정리해서 명기했다. 재단 경력 4년까지 이력서에 넣는다면 자격 요건은 충분히 만족시키게 되는 셈이다.

 

5시 조금 넘어 회의를 시작했고 한 시간 반쯤 후에 회의를 마쳤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상반기 문화예술 활동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에 잡지의 콘텐츠 채우기가 만만찮을 것 같다. 더구나 내가 맡은 꼭지가 공연 현장을 돌아본 후 감상과 비평을 남기는 것인데, 상반기에 방문했던 곳은 후배의 사진 전시회 한 곳뿐이다. 고육지책으로 온라인 공연 영상을 찾아 감상한 후 리뷰를 남기기로 정리하였다. 작년만큼의 결과물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회의를 마치고 주점 갈매기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비 때문인지 일행들은 모두 약간씩 들떠 있었다. 그곳을 나와 비를 맞으며 근처 ‘꿀주막’으로 2차를 가면서도 연신 웃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술집의 통유리창을 통해 내려다본 비 내리는 거리의 행인들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귀가를 위해 도로변에서 택시를 기다리다 달리는 승용차가 뿌리고 간 물벼락을 맞아 오들오들 떨면서도 깔깔대며 웃었다. 일행들과 함께 그 일을 겪어서 웃었고, 기가 막혀서 웃었고, 낯선 경험이 주는 모종의 쾌감 때문에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정신을 차리니 몸은 더욱 떨렸다. 임계점에 도달할 때쯤 막내의 남편이 자가용을 가지고 와 집까지 나를 ‘배달해’ 주었다. 장맛비가 선사한, 간만의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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