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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이제는 합리적 낙관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 할 때 본문

일상

이제는 합리적 낙관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 할 때

달빛사랑 2020. 1. 13. 11:24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차별 없는 세상, 통일 세상을 열망하며 조직된 진보적 예술연대, 한국민예총은 30년 세월의 강을 건너와 이곳에 있다. 그 강을 건너는 동안 많은 동지들이 예술가적 자존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고, 건강을 잃었으며, 최소한의 삶의 조건마저 기꺼이 포기했다. 시대가 강제한 예술연대, 한국민예총은 늘 민중의 안온한 삶을 도둑질하는 반민주 반노동 반예술 세력들의 구축(驅逐)을 위해 선봉에 서왔다. 그 투쟁 속에서 우리는 올연했고, 때때로 만난 승리 속에서 뿌듯했으며, 은성했던 조직 속에서 안심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국민예총은 시대의 전위들 속에서 우뚝했으며 다양한 층위의 연대 속에서 강고한 진보적 예술의 담론을 실천하고 고민하는 유력한 단위이자 생산지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의 연대는 여전히 강고한가? 우리는 여전히 시대의 전위인가? 아직도 우리에게는 모순 앞에서 돌진하는 투혼이 남았는가? 은성했던 시절에 대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더듬으며 냉소주의자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현실의 엄혹함이 두려워 자족적인 예술가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가끔 만난 승리에 도취되어 잦은 패배의 근거를 만들어 오진 않았던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는가? 하여 이제는 처절하고 냉정하게 우리의 과거와 우리의 현재를 반성할 때다. 겸손하기 때문이 아니라 조악해진 현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다. 인정하고 다시 일어나 새롭게 조직을 추스르기 위해서다.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구체적 삶의 현장에 뿌리를 두고, 치열하고 분주한 저마다의 살이속에서 발현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다양한 미적 방식으로 구현해 내는 가장 치열한 실천행위다. 그리고 한 시대의 품위는 바로 예술과 예술가들의 그러한 실천행위를 통해 확보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예술가들은 모두 현장 활동가이자 시대의 전위여야 한다. 가장 신선하고 발랄한 상상의 힘으로, 누구보다 치열한 실천의 몸짓으로, 훼손된 가치들이 만연한 미친 세월을 끝장내야 할 시대의 전위, 그것이 예술의 가치이자 예술가의 자존심이다.

 

우리는 얼마 전, 유장한 촛불의 물결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예술가로서의 자존을 포기할 수 없어 비 오거나 바람 불거나 아랑곳 않고 견결히 광장을 지켜온 경험이 있다. 반문화 반()예술 세력들이 음모적으로 작성한 블랙리스트를 오히려 훈장처럼 여기며, 본래 우리 것이었으나 지금은 빼앗긴 우리들의 삶과 우리들의 예술을 되찾기 위한 장엄한 투쟁을 한결같이 전개했던 경험이 있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민예총, 그리고 모든 진보적 예술가들이 시대와 역사 앞에, 그리고 자신의 예술 앞에서 취해야 하는 행동인 것이다.

 

민중의 삶이 도탄에 빠져있는데, 예술이, 혹은 예술가가 그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만의 고고한 미적 세계에 침잠해 있다면 그것은 생명력이 없는 예술이고, 자족적인 예술이 될 수밖에 없는 것, 부조리한 시대에는 그 부조리함을 타격하는 실천 자체에서 가장 빛나는 예술이 탄생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고민하고 고구하고 표현방식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예술가의 고민은 질적으로 깊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야 한다. 인간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위하여, 인간 최소한의 생존권을 위하여,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사수를 위하여 창작하고 실천하고 연대하는 예술가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제 한국민예총은 30년의 영욕과 신산을 딛고 넘어 닫힌 사회와 그 파수꾼들을 발본색원하고 향후 백 년의 예술과 백 년의 세상, 백 년의 아름다움과 백 년의 희망을 이야기할 때다.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전쟁의 종식과 평화 정착, 빈부대립과 각종 차별이 없는 세상, 신념의 차이가 존중되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의 유력한 무기,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할 때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합리적 낙관을 바탕으로 흩어진 역량을 추스르고 차이와 이견 속에 도사린 합리적 핵심을 보존하며 희망을 이야기 할 때다. 가장 예술적 방식으로, 가장 치열한 삶의 모습으로 분단을 넘어 통일된 세상을 앞당기고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신선한 상상력으로 열어젖히는 실천하는 예술가로 거듭나야 할 때다. 그것이 시대와 역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이고, 그것이 한국민예총의 기치가 돼야 한다. 우리 모두는 예술적 전위이자 새로운 세상의 척후들이다. 가자, 모든 장벽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예술의 실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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