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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버텀라인 블루스 본문

일상

버텀라인 블루스

달빛사랑 2019. 8. 27. 19:03


나와 당신이 잊고 있을 때도 그것은 항상 그곳에 있었다. 나와 당신이 익숙한 거리를 깔깔거리며 지나칠 때도 그것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비 오는 날이거나 눈 내리는 날이거나, 바람 부는 날이거나 혹은 당신이 천근같은 슬픔으로 눈물을 흘릴 때나 벅찬 기쁨으로 환하게 웃을 때나 그것은 거기에 숙명처럼 있었다. 찾아주지 않아도 거기에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그곳을 찾았을 때 나와 당신의 미안한 마음을 애인의 손길처럼, 흐르는 물처럼 부드러운 선율로 이완시켜주던 그곳.

 

이제 새삼 그곳을 기억한다. 이제 새삼 그곳을 말하고, 쓴다. 나를 닮은 또 다른 나에게, 당신 닮은 허다한 당신들에게, 가장 밑바닥(bottom)으로부터 잠에서 깨어난 가장 부드러운 선율은 당신과 나의 무뎌진 마음의 현()을 건드리고 그리움과 사랑을 버무린다. 당신의 부끄러움, 슬퍼진 당신, 당신의 희열, 아름다워진 당신이 조금씩 시나브로 버무려진다. 흐느낌처럼 속삭임처럼 그곳을 채우고, 꽉 찬 공간 속의 당신을 물들이고 흐른다. 구른다. 구르다 선(line)이 된다. 가장 평온한 자세로, 가장 평등한 숨결로, 가장 겸손한 자세로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재즈.

 

재즈는 힘이 세다. 그렇다면 이제 나와 당신이 그곳을 기억해 줄 때다. 이제 나와 당신이 그곳을 찾아 바닥에 누운 그리움과 사랑과 당신의 등뼈를 닮은 재즈에게 손을 내밀 때다. 이제 당신이 그곳을 찾아 온기를 보태줄 때다. 이제 당신과 나의 눈과 귀, 입과 마음을 대신하는 레코드판들과 그것들 사이사이 스며있는 허다한 사연들을 호명할 때다. 사랑이란 그런 거니까. 기억할 수 없을 때조차 기억하는 것, 기억할 수 있을 때 녹아드는 것, 기억하기 위해 바닥(bottom)까지 내려가 기꺼이 눕는 것(line), 그것이 바로 사랑이니까. 버텀라인, 내 그리움의, 내 추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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