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자책과 그리움이 우리를 만나게 한다 본문
한때 그들과 세상을 바꾸려고 한 적이 있었다. 젊은 심장과 푸른 신념을 지니고,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한 채 일부로 위험한 곳을 골라 디디며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사실 겉으로는 의연한 척 했지만 사실 나는 무척이나 두려웠고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의심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달려드는 그러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일부러 더욱 센 척하면서 나처럼 동요하던 동료들에게 날선 비판을 해대기도 했다.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몸짓이었나를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으나 내 인생의 가장 명민했던 시절, 어쩌면 나는 내가 아닌 나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세상이 변하고 자연스레 투혼도 식어가면서 많은 동료들이 저마다의 살 길을 찾아 나설 때도 나는 머뭇거리면서 쉽게 새로운 길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들어서게 된 학원 강사의 길도 생각해 보면 내 스스로 모색해서 찾아낸 길이었다기보다 주변의 인맥을 통해서 우연하게 들어서게 되었을 뿐이다. 천성이 부지런해서 우연하게 만난 길이었지만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제법 이름을 날리게도 되었지만 그것이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그것은 기호지세의 상황이었을 뿐이었다. 가장 노골적으로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그 세계에서 나는 많은 돈을 벌었고 많은 일탈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전의 동료들을 서서히 잊어갔다. 생활 현장에서 자리 잡지 못한 동료들은 나의 ‘성공’을 부러워했지만 사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전망이 뚜렷하지 않은 삶 속에서 얻은 성공이란 필연적으로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 역시 하루하루가 팍팍함의 연속이었고, 따라서 상대방의 삶의 질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그때 그 시절의 동료들을 만나면 반가우면서도 불편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이전에는 몰랐던 생활의 격차가 보이기도 하고 세월 속에서 너무도 변해버린 동료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 또한 늘 개운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동료들의 ‘성공’은 그들 자신이 치열하게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동일한 조건에서 활동할 때와는 달리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획득된 선대의 재산과 그로 인한 성공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샘과 질투 속에서 화학작용을 일으켰고 이내 “당신들은 부모 잘 만난 덕에 윤택한 삶의 열차에 무임승차 한 거 아니야?”라는 알량한 폄훼의 마음으로 자리 잡곤 했던 것이다. 한 때의 혁명 동지들에게 질투를 느끼다니, 참으로 유치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같은 형편과 처지’의 동료들이 많아서 동병상련으로 술잔을 나누지만 잠시나마 맘속에 시샘을 키웠다는 자책 때문에 동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면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모멸 때문에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동료들을 오늘 1년 만에 다시 만났던 것이다.
참석하마고 약속했던 선배들 중 많은 분들이 갑작스럽게 일이 생겼다며 불참을 해서 열 명 정도만 참석한 조촐한 송년회 자리였다. 다행히 모두들 안녕했고, 표정들도 밝았다. 1년 사이에 특별히 변한 사실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명함의 직함과 내용이 바뀐 사람들이 몇 명 있었지만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의례적인 인사들을 나누고 최근의 안부를 다소 조미료를 섞어 이야기를 한 후, 술이 들어가자 노래를 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과거의 무용담을 풀어내고 서로 다른 기억들을 조율하면서 취해갔다. 자리에 없는 사람들이 대화 속에서 호명되고, 몇몇은 즉석에서 연락을 해 목소리를 들었다. 흔한 술자리였다.
나는 민연 동료들이 아니더라도 이런 종류의 흔한 술자리는 무척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1년이면 꼭 한 번 모여서 역시 ‘그 흔한 술자리의 모습’을 매번 연출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어떤 아쉬움(그리움이라고 해도 좋을)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지녔던 때 묻지 않았던 심성과 푸른 신념들에 대한 그리움 혹은 뭔가 세상을 바꿔냈어야 한다는 자책들이, 요즘 별로 달라진 것 없는 세상에서, 아니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현재의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새삼 그 시절의 젊은 심장들을 자꾸만 호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어쩌면 바로 그 아쉬움과 그리움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에서 하루 종일 보내다 (0) | 2016.12.18 |
---|---|
불금에 장을 보다 (0) | 2016.12.16 |
단단히 얼어붙다 (0) | 2016.12.14 |
겨울, 그 흔한 쓸쓸함 (0) | 2016.12.13 |
만나고 참석하고 (0) | 2016.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