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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불금에 장을 보다 본문

일상

불금에 장을 보다

달빛사랑 2016. 12. 16. 22:00

허리 통증은 어머니를 쉽게 떠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구부정한 허리로도 어머니는 내 아침저녁 밥상을 정성스레 차린다. 용돈을 드리면 그것을 쓰지 않고 가지고 계셨다가 내 밥상에 올릴 반찬거리를 사시곤 한다. 그래서 오늘은 귀갓길에, 닭 한 마리, 순두부 2, 순두부 양념 2, 시금치 1, 콩나물 한 봉지, 대파 1, 깐 마늘 1킬로, 두부 2, 양파 1, 송이버섯 1, 오징어젓갈 1, 마른 김 1묶음 등 약 45천 원어치 장을 봤다. 묵직하다. 물가가 올라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하룻밤 술값 정도면 이렇듯 넉넉한 장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매번 놀란다. 또한 5만 원이면 쌀 20킬로 한 부대다. 어머니와 내가 한 달은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그렇다면 술값은 얼마나 가성비가 떨어지는 지출이란 말인가. 물론 술자리는 가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만남의 즐거움을 경험하게도 한다. 그러나 한 달에 서너 차례 갖는 술자리의 술값만 아껴도 어머니와 나는 정말이지 매일매일 진수성찬(까지는 아니더라도)의 밥상을 만날 수 있다. 생필품과 비교할 때 술값의 거품은 쉽게 와 닿는다.

 

생각하면 나는 젊은 시절부터 정말 많은 술을 마셔왔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 모질게 마셨다. 왜 그렇게 무식하게 술을 마셨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아하게 마신 기억보다는 그악스럽게 마신 기억이 허다하다. 그리고 심각한 문제는 항상 술자리가 화근이 되었다. 술자리에서 오해가 발생하고 술자리에서 타인에 대한 험담이 이루어지며 술자리 때문에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음주운전으로 인해 면허가 취소된 적도 있고 음주 때문에 불필요한 다툼이 있기도 했다. 물론 술자리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서로간의 오해를 풀어주기도 했지만 횟수를 따진다면 그러한 순기능은 허다한 역기능에 댈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어느 순간부터 그 동안 시달려 왔던 몸이 술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의 음주 관성을 하루아침에 떨쳐버릴 수는 없기에 여전히 전투적 자세로 술판에 앉지만 이제 몸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양의 술을 견디지 못한다. 아마도 이제는 술 자체보다는 술판의 분위기와 그 속에 있었을 때의 몸의 기억이 여전히 술자리에 나를 앉도록 하고 있지만, 그것도 아마 머잖아 시들해질 것이 분명하다.

 

각설하고, 일찍 장봐서 들어갔더니 어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기뻐하셨다. “그렇잖아도 국거리가 없어서 뭘 해줄까 걱정했는데 시장 잘 봐왔다.”라고 하시며 장 봐온 음식들을 하나하나 꺼내 냉장고에 넣으셨다. 나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천안의 친구는 불금인데 왜 술 안 마셔?”라며 약간 비난 섞인 문자를 보내왔지만, 나는 오랜만에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지인들과 더불어 술을 마시는 것보다 훨씬 기분 좋은 일이라며 답장을 보냈다. 이럴 때도 있어야지. 불금 날 필() 음주도 일종의 버릇이란 생각이다. 안 좋은 버릇은 고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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