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겨울, 그 흔한 쓸쓸함 본문
기다리는 눈은 좀처럼 오질 않았다 나의 방은 여전히 춥고 어디론가 불쑥 사라졌던 바람들은 종소리를 들고 다시 나타나 닫힌 창 밖에서 윙윙거렸다. 거리엔 익숙한 가수의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이 울려 퍼지고 길을 가던 사람들은 발끝으로 땅을 튕기며 나지막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사람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몇몇 기억조차 지워버리고 부쩍 많아진 술판에서 모든 것들의 이마 위에 너무도 쉽게 건배를 했다 부딪치는 술잔과 풀어진 눈 속으로 한 해의 여울목들이 지친 숨을 고르며 유순해진 물살로 들어차고 있었다
희망이란 말도
엄격히 말하자면 외래어일까
비를 맞으며
밤중에 찾아온 친구와
절망의 이야기를 나누며
새삼 희망을 생각했다
절망한 사람을 위하여
희망은 있는 것이라고
그는 벤야민을 인용했고
나는 절망한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데카르트를 흉내냈다
그러나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유태인의
말은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
희망은 결코 절망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망에 관하여
쫓기는 유태인처럼
밤새워 이야기하는 우리는
이미 절망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은 것일까
통금이 해제될 무렵
충혈된 두 눈을 절망으로 빛내며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 절망의 시간에도
희망은 언제나 앞에 있는 것
어디선가 이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고 지켜야 할
희망은
절대로
외래어가 아니다
-김광규 '희망'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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