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수선화가 된 나르시소스-양희은, '일곱송이 수선화' 본문
청아한 모습과 그윽한 향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수선화는
꽃에 얽힌 애잔한 신화로도 유명합니다.
나르시소스는 꽤나 잘 생긴 목동이었지만,
조금 건방졌던 모양입니다.
숲속의 요정 에코가 그를 사랑하게 된 데서부터 비극이 시작됩니다.
에코는 나르시소스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안간힘썼지만,
나르시소스는 요정 에코의 구애를 무시했지요.
나르시소스의 사랑을 얻지 못한 에코는 마침내
실연의 깊은 상처로 한줌의 재가 되어 바람에 실려 사라지고 말지요.
그 뒤로도 물의 요정, 숲의 요정 등 많은 요정들이
나르시소스의 사랑을 얻고자 했으나
번번이 나르시소스는 그들을 무시하곤 했습니다.
그러자 요정들은 이 건방진 미소년(나르시소스)도
실연의 아픔을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습니다.
요정들의 기도를 들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나르시소스로 하여금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을 사랑하도록 합니다.
이후... 나르시소스는 여신 네메시스의 주문대로
자신을 향한 사랑에 빠져 신음하다 죽어가게 되지요.
그가 죽은 자리에서 그를 닮은 잘 생긴(?)
꽃 한송이가 피어났는데, 그게 바로 수선화였습니다.
그래서 수선화는 '자기애', '자만','고결함'을 꽃말로 얻게 됩니다.
'자만'과 '고결'을 동시에 꽃말로 갖게 된 수선화...
그런데... <자만>과 <고결>은 의미상의 거리가 그리 가깝지 않은 단어입니다.
이 두 성품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나타날 수 있을까요?
'자기에 대한 지극한 사랑' 혹은 '자만'이
'고결'과 심층적인 면에서는 일맥상통한다는 말일까요?
그런가요?... (하긴.. 지나친 자기애를 가진 이가 종종
정신적 결벽을 보이는 걸 자주 보긴 합니다만...)
그것은 아마도, '보여지는 대상(타자화 된)'으로서의 나르시소스'와
'보여주는 주체로서의 나르시소스' 중, 어느 쪽에 초점이
맞춰지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요...적당한(?) '자만'은 개인에게 있어
'자존'과 '고결'을 지키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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