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치악의 품에서 사계절을 만나다... 본문
제물포 고등학교 총동창회에서는 일 년에 두 번(봄, 가을)씩 정기 산행을 조직하는데,
올 봄 산행의 목적지는 원주에 있는 치악산이었습니다.
치악산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 많은 기대를 안고 참가를 했는데,
역시... 강원도의 산이고, '악산(岳山)' 답게 산세가 매우 깊고 험해서
마치 극기 훈련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최근에 다녀온 서울 근교 산들의 여러 코스 보다도 더욱 험하고 힘들었던 코스였다고 생각됩니다.
주최측에서 답사를 통해 마련한 코스는 난이도에 따라 A▪B▪C 코스 3종류였는데,
저는 당연하게도(?) 가장 길고 험한 A코스(4시간 30분)를 선택했습니다.
(‘금대리 주차장→금대매표소→영원사→아들바위→문바위→상원사→남대봉(1181미터)’)
주차장에서부터 '영원사'까지의 계곡길은 마치 소풍 나온 기분으로 산행을 했습니다.
지루할 정도로 완만하고, 등산로와 함께 옆으로 펼쳐진 계곡의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룰루랄라...^^
그러나, '영원사'를 지나자마자 시작되는 가파른 계곡길은 정말 '악'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치악산이 우리에게 "너, 나 만만하게 봤지?"하고 질타의 말을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가도가도 목적지가 나타나지 않아, 산 중턱 쯤에 퍼질러 앉아서
이 코스를 선택한 걸 얼마나 눈물(비오듯 흐르는 땀)로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보통의 산들은 평탄한 능선길을 중간중간 보이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소위 말하는 '깔딱고개(정상 직전의 매우 힘든 코스)'를 펼쳐보이는 법인데....
치악산의 이 (저주받을^^) 코스는 중턱부터 끝까지 급경사와 바위로 이루어진,
깔딱의 연속이니.... 이게 '강원도의 힘'인가요? '악산'의 자존심(?)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치악산은 빡센 산세로 우리에게 '채찍'만을 휘두른 건 결코 아닙니다.
'혼자보기 아름다운 경관'이라는 '당근'을 통해 우리에게 감동과 위로도 아울러 제공했답니다.
계절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치악산은 희한하게도 자신의 품 속에
4계절을 모두 품고 있더군요. 이건 정말 신선한 감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올라갈 때는 정말 "에이, 두 번 다시 이곳엔 오지 않으리." 하며 툴툴대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어느 산보다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산으로 가슴에 남았습니다. 제 맘 참 헤프죠? ㅎㅎㅎ
그러나... 여러분도 직접 경험을 해 보면.. 아마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감동을 느끼실 걸요...아마도...^^
잎이 없는 나무와 고사목 옆에, 아직 지지않은 봄꽃 나무가 함께 어루어져 있네요.
마치 가을과 봄, 두 계절이 공존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초입에서 바라보는
웅장한 산세는 정말 멋졌습니다. 약간의 위압감도 느꼈습니다.
낙엽이 양탄자처럼 푹신푹신하게 깔려있는 능선길...
사진상으로 보면 마치 가을 산행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참 희한한 경험이었답니다. 4월말에 낙엽을 밟을 줄이야...^^
영원사를 지나 본격적인 계곡길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며칠 전 전국적으로 내린 비 때문인지 계곡에는 물이 참 많았습니다.
폭포처럼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물 줄기.. 이 장면은 마치
한 여름, 계곡의 풍경입니다. 시원함이 느껴지십니까? ... 그런데 산 속의 기온은 사실 매우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악(岳)'산 답게.. 돌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런 돌 산의 산행은 특히 위험하고,
흙산을 오르는 것보다 곱절로 힘들답니다.
거대한 바위와 바위 사이가 마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느껴졌습니다.
저 '바위문'을 통과하면 요정이 나타나 나를 안고 두둥실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은 느낌...ㅎㅎㅎ
힘이 너무 들어 정신이 혼미해지니까 별 생각이 다 나더군요. ^^
꽃이름은 모르겠고... 그래도 계절적으로 산 아래가 봄이라고 산 속에도 꽃이 피어있더군요.
그런데...화사한 느낌보다 '너 참.. 외롭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꽃은 아마도 힘들게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수줍지만 작은 미소를 보내주기 위해
그곳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피어있는 게 아닐까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눈 속에 핀 꽃... 잎과 줄기에는 얼음이 맺혀 있고, 바닥에는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있는데
그래도 노란 꽃을 피우고 있는 이 녀석을 보면서 참 눈물이 났습니다.
얼음과 눈 속에 피어난 꽃... 그 자체만으로도 참 감동적이었지요.
치악산에서 만난 겨울... 간 밤에 내린 눈들이 미처 녹지 않고 쌓여있습니다.
하나의 산이 이렇듯, 꽃과 눈을 동시에 품고서... 지나는 행인들에게
가슴을 열어보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텐데... 물론 많은 산들을 오르신 분들은
이런 경험을 자주 하셨겠지만... 산행 경험이 일천한 저로서는 신선한 감동이었습니다.
목적지인 남대봉과 상원사가 갈라지는, 갈림길로 오르기 위한 마지막 깔딱 고개.
경사도 상당히 가파랐고, 더구나 눈 녹은 물 때문에 바위가 미끄러워서
오르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자.. 조금 더 힘을 내자.. 어영차...^^
이정표가 있는 능선길... 우리가 <금대 야영장>을 거쳐 왔고, 남대봉을 올랐다 다시 상원사를 들러 원점 회귀를 해야하니
우리가 걸은 거리의 총합은 4.7+0.2+0.2+0.4+0.4+4.7=11.4킬로미터..와우..
사실 주차장에서 야영장(하산 후 식사를 한 곳)까지의 거리도 3~4킬로미터였으니, 실제 걸은 거리는
15킬로 미터가 넘는다는 말인데... 이러니 극기훈련이라고 할 수밖에...^^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남대봉으로 올라가는 길... 등산로는 눈이 녹아 미끄러운 진창길이 되어있었습니다.
마치 늪지 탐험을 하는 느낌이었답니다. 실제로 미끄러지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들은 하산했을 때, 미끄러져 더럽혀진 옷을 마치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했답니다.^^
남대봉에서 내려와 다시 상원사로 내려가는 길... 이 길은 경사가 있는데다
미끄러워서 정말 곤혹스런 길이었습니다. 녹지 않은 눈들이 길 양편에 쌓여 있더군요.
상원사는 그리 큰 절이 아니었습니다. 워낙 오르기가 험한 곳에 위치해서 그런가
주말인데도 경내는 무척이나 한산한 느낌이었습니다.
남대봉(해발 1.182미터) 정상에서 한 컷...
너무 힘들었는지, 늘 보이는 그 뚱한 표정.. 아 미치겠다. 왜 이렇게 사진발이 안 받는건지..ㅎㅎㅎ
실물은 정말 괜찮은데....^^ 믿는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ㅋㅋㅋ
관록있는 산행 친구 김기홍과 하산하다가 한 컷!
늘 산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산은 사람을 참 겸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산 아래 인간의 세상에서 '그'가 어떤 지위, 어떤 기득권을 누려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위의 고하와 상관없이 산은 '그들'에게 다른이와 똑 같이 땀과 노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품 속으로 들어와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는 사람에게
산은 자신의 가슴 속 내밀한 풍경들을 보여주고, 살갑게 이야기를 던진다.
그렇게 산과 대화를 나누고 내려온 '그'는
더이상, 산을 오르기 전의 '그'가 아니다.
그래서.... 오늘 문득.. 내가 나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마음을 열고 산이 던진 내밀한 이야길 듣고 왔던가?"
-달빛, 그리고 사랑...2009.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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