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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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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 끝내고 출근하기 위해 옷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다가 문득, 정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티슈가 담긴 비닐 속을 살펴보고 싶었다. 탐정처럼! 그야말로 '그놈의 비닐봉지가 내 눈 안으로 들어왔다'였다. 엊그제 비서실 회식 끝나고 집에 와서 옷 갈아입을 때, 바지 주머니에 있던 에어팟 케이스가 방바닥에 떨어지면서 안에 있던 유닛들이 튕겨 나왔다. 그날 양말 상자와 서랍장 주변, 방의 구석구석을 다 찾아봤지만, 왼쪽 유닛은 끝내 찾지 못했다. 이튿날 술이 깬 상태에서 다시 옷방에 와서 찬찬히 살펴봤지만 역시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아, 한쪽은 차에서 음악 듣느라 넣고 빼고 하다가 잃어버린 모양이군’ 하고 찾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쿠팡에서 왼쪽 정품 유닛을 6만 9천 원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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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밤의, 끊긴 기억의 복원을 위해 C에게 두 차례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에어팟 분실 건도 그렇고 누구에게 받았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는, 영양제 한 통이 주머니에 들어있었다. 택시를 타고 온 건 확실한 거 같은데 교통비를 결제한 기록이 없다. 추측건대 누군가가 카카오 택시를 잡아준 것 같은데 확인할 길이 없다. 아무튼 그래서 몇 가지 궁금한 걸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일부러 받지 않은 건지 어쩐 건지 알 수 없으나 기분이 상한 건 사실이다. 살면서 이런 경우가 가장 곤혹스럽다. 그날 낮에 잠깐이라도 자보려고 수면제 두 알을 먹은 게 모든 일의 원인이 된 것 같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저무는 시간은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을. 망가지는 시간, 초라해지는 시간, 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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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혁재 공연을 보러 가려했으나 엊그제 (크리스마스이브) 만난 상훈이의 부친께서 소천하신 까닭에 길병원 장례식장 가느라고 신포동에 안 갔다. 공연이야 다음에 봐도 되는 일이지만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된 후배를 위로하는 일은 당장 해야 할 일이었다. 사실 장례식장에서 밤샌 것도 아니고 밤샐 생각도 없었기에 시간 맞춰 신포동 '흐르는 물'에 (갈 마음만 먹었으면) 갈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혁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너무 피곤했다. 어제 술자리 후유증도 좀 있었고, 황폐해진 마음으로 다녀오기에는 신포동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그만큼 마음이 복잡한 하루였다. 무기력해졌다. 에어팟 프로 왼쪽 유닛을 잃어버렸다. 7만 원 주고 왼쪽 유닛만 다시 주문했다. 친구 오영철의 아들이 결혼했지만, 식장이 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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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정신없었다. 오늘은 길병원 진료 예약도 있었고, 실내 자전거 수리 예약도 있었으며, 저녁에는 비서실 회식도 있었다. 결국 너무 피곤한 나머지 길병원 진료는 펑크 냈다. 자전거 수리비는 출장료와 베어링 교체까지 4만 원이 나왔다. 구매한 지 1년 조금 지난 제품을 수리하면서 4만 원이나 챙기다니, 맘이 개운하진 않았다. 안장에 앉아서 페달만 돌렸는데, 고객의 잘못에 의해 고장 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러니 오히려 고객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닌지....... 서비스 기사가 돌아간 후 부리나케 옷 갈아입고 비서실 회식 장소로 갔다. 얼추 도착했을 때 박 비서실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식당가 골목으로 들어서자 식당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며 전화를 거는 그가 보였다. “아, 왜 안 와요?”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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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했다가 점심시간에 퇴근했다. 내일도 출근해야만 해서 오전 근무만 한 것이다. 내일 길병원 예약도 있고, 비서실 회식도 예정되어 있다. 어차피 청에 나와야 하는 날이다. 사실 병원 예약 사실은 깜빡 잊고 있었다. 모바일 AI 비서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오후에는 실내 자전거 서비스 기사가 전화해 내일 4시 전후에 방문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 순간 생각이 많아졌다. “그럼요, 와도 됩니다”라고 말할 경우, 나는 청에서 근무하다가 4시쯤 집에 들러 서비스 기사를 만나 서비스를 받은 후 비서실 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청사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날 오라고 하면 그만큼 서비스가 늦어져 자전거를 탈 때마다 불쾌한 잡소리를 들어야 한다. 서비스 기사의 전화로 여러 일정이 무척 비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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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잔뜩 낀 흐린 크리스마스 아침, 대기질도 최악이었다. 멍청한 윤가의 계엄 소동 때문에 경기는 얼어붙고 민심은 흉흉하며 연말 특유의 북적임도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 캐럴을 틀어놓고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끼며 집 안을 청소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팻 분의 목소리, 잠시나마 옛 추억에 빠져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오전에는 성탄절 예배를 마친 누나들이 집에 들러 함께 점심 먹었다. 누나들은 집에서 대충 만들어 먹자고 했으나 내가 나가서 먹자고 해 근처 식당에 들러 갈비탕을 먹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가 밥값을 계산한다고 했더니 말리지는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돌아오며 보니 모든 식당이 손님들로 북적였다. 아참, 그리고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엔믹스(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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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용한 크리스마스이브를 경험한 적이 없다. 내가 스스로 번잡함을 피해 거의 은거(隱居) 수준으로 방콕 한 적은 있었지만, 그때도 내 골방 밖의 세상은 무척 요란했다. 아침부터 분주했다. 이를테면 채소가게 들러서 각종 채소를 구매했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렸으며 입지 않는 옷을 분류해 따로 쌓아놓았다. 또 실내 자전거가 페달을 밟을 때마다 잡소리가 들려 서비스도 신청했다. 심지어 잘못 배달된 택배(문화재단에서 나에게 보낸 8권의 책인데, 내가 있는 3층 정책특보실이 아니라 2층 정책기획조정팀으로 잘못 배달되었다)를 출근한 보운 형에게 연락해 되찾아 놓기도 했다. 오후에는 낮잠도 자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저녁에는 오전에 사 온 채소들을 넣고 비빔밥을 먹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오후에 S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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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인천문화재단 예술인지원센터(동인천 구 인천여고 자리)에 들러 문화예술지원사업 심의위원풀 선정위원회에 참석했다. 회의가 오전 9시 30분이라서 다른 날보다 일찍 집에 나왔다. 바람은 불지 않았으나 제법 차가운 날씨였다. 회의장인 예술인지원센터가 옛 건물이라서 그런지 난방 상황이 좋지 않았다. 추위를 타지 않는데도 발이 시렸다. 11시 30분쯤 회의가 끝난 후 식사하고 가라는 본부장의 권유에 근처 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했다. 본부장을 비롯한 직원들과 차를 가지고 온 심의위원들은 센터 쪽으로 가고 나는 동인천역에서 전철 타고 청사로 귀환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괜스레 맘이 설렌다. 현재 전쟁 같은 하루하루가 긴박하게 흐르고 있는데 나는 눈치도 없이 자꾸만 누군가가 생각나고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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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다. 사악하면서도 멍청한 통(統)만 아니라면 정말 한 없이 늘어져도 별로 세상에 미안하지 않은, 그렇게 평화로운 휴일이었다. 오전에는 채소 가게에 들러보려다가 날이 생각보다 추워 다음에 가기로 했다. 종일 보일러 제어기의 빨간 불빛(보일러 가동 중 불빛)이 꺼질 줄을 몰랐다. 22도로 되어있는 실내온도를 1도만 내릴까도 생각했는데, '1~2만 원 더 내고 따뜻하게 살지 뭐. 내가 다른 호사를 누리는 것도 아니잖아'라는, 지극히 반환경주의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후배들은 어제 공연을 잘 끝낸 건지 어쩐 건지 알 수 없지만, 딱히 궁금하진 않았다. 가끔 누군가가 미치도록 그리웠다. 다행히 가슴에 꽉 들어찼던 그 그리움은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시나브로 빠져나갔다. 그리운데도 만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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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집에서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를 시청했다. 가끔 책을 뒤적거렸으나 오래 붙잡고 있지는 못했다. 빗방울이 간헐적으로 떨어지다 말다 했다. 저녁에는 혁재와 산이의 공연이 있어 들러볼까 했는데, 그만두었다. 메인이 아니라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날이 추웠다. 그리고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아마도 또 술을 마셔야 했겠지. 연이은 음주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물론 어제는 그리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오늘 메일로 도착한 건강 검진 결과 통지문에 당뇨가 의심된다는 항목이 있어 기분이 우울했다. 어머니도 생전 당뇨약을 복용했고, 동생도 이미 당뇨약을 먹고 있는 터라 나 역시 분명 당뇨 진단의 순간이 오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수치가 높게 나온 통지서를 보고 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직 담당의사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