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흐린 봄날, 비는 내리고 (4-2-수, 흐리고 비) 본문
날은 아침부터 흐렸다. 휴대전화 AI 빅스비를 통해 날씨를 물었더니 오후 4시쯤에 비가 온다고 예보했다. 아침부터 살짝 설렜다. 최근에 뜬금없이 몇 차례 눈발을 날렸으나 비다운 비는 오지 않았다. 비번이라서 집에서 쉬거나 오후에 출근할 생각이었다. 아침 운동 끝내고 쉬고 있을 때, 이름도 귀여운 비서실 모나미 비서가 전화했다. 4.16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추모제에서 낭독할 감(監)의 추모사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아, 벌써 1년이 지나고 다시 4월이 왔구나’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세월이 빠르기도 빠른 거지만, 올해로 11주기 되는 참사와 관련해서 여전히 그날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 있는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아니 사과는커녕 유족과 희생자들의 죽음을 조롱하기까지 하는 후안무치한 인사들이 더욱 많아졌다. 특히 이름 있는 정치인들이 더욱 파렴치한 말과 행동으로 유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그러니 유족들은 11년 전 비극의 그날로부터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도 산 게 아닌 절망과 슬픔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올해는 대통령이 탄핵당해 저 지경이 되어 있으니 진실 규명은커녕 사과조차 언감생심이다. 자신들의 형제와 자녀들이 참사를 당했어도 그따위 망발을 서슴없이 했을까? 눈곱만큼의 공감 능력도 없는 저들이 득세하는 세상은 천박하고 살풍경할 거라는 건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늘 세월호 추모사와 광주항쟁 추모사를 쓸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세월이 지날수록 슬픔이 무뎌지는 게 아니라 그날의 사건을 추체험하는 일이 더욱 힘들어진다. 그건 앞서 말했듯 명쾌한 사실 규명, 관계자들의 사과와 반성,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이해하려는 전 사회적 인식의 변화 등 유족들을 일상으로 돌아오도록 독려하는 많은 대책 중 단 한 가지도 확실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4월은 참 애잔한 달이다. 제주 4.3 항쟁, 4.16 세월호, 4월 혁명 등 천박한 시대, 야만적인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과 탐욕에 찌든 정치가와 그들과 결탁한 욕망의 화신들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인재(人災) 탓에 죽어간 애꿎은 넋들이 많기도 많은 달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을 책임져 주지 않는 나라, 탐욕 때문에 사람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사회는 병든 나라이고 희망 없는 사회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렇다. 국민은 자신의 안전을 직접 챙겨야 하고, 못된 정치의 부작용은 오롯이 국민이 뒷수습해야 하는 형국이다. 이런 나라에서 산다는 건 생사를 넘나드는, 힘든 일이다. 국민이 가엽다.
예보와는 달리 4시가 넘을 때까지
온다던 봄비는 닿지 않았다.
종일 사무실에 홀로 앉아 원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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