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뜻밖의, 하지만 행복했던 봄밤 (3-11-월, 흐림) 본문
보일러 온도를 23도에서 22도로 1도 내렸습니다. 날이 그만큼 풀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 더 실제적인 이유는 가스비가 너무 많이 나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혼자 사는 집에서 난방비를 30만 원 가까이 지불한다는 게 아까웠어요. 환경오염 차원에서도 절약할 필요도 있고요. 사실 열이 많아 이불을 덮고 자지 못하는 나는 집 안의 공기가 따뜻해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한겨울에 반팔 반바지를 입고 지내도 될 정도로 실내 온도를 높이고 생활해 왔던 거지요. 이번 겨울부터는 실내 온도를 지금보다 2도는 낮춰 볼 생각입니다. 가스비도 전기세도 누진세가 적용되기 때문에 조금만 절약하면 의미 있는 수준으로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퇴근 무렵 H가 전화했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최근 연락도 제대로 못해서, 무척 반가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톡방에서 센터 일정 확인해 보니, 너네 팀 무척 바쁜 것 같더라. 그래서 방해될까 봐 한동안 일부러 전화 안 했어. 나는 늘 시간을 맞출 수 있으니 네 시간에 맞춰서 연락해. 그때 만나서 맛있는 거 먹자"라고 했더니 그녀는 "무슨 말씀이세요. 선배가 연락하면 제가 맞춰야지요." 했습니다.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었어요. 마음이 콩콩거렸습니다. 그때 H가 갑자기 "선배님 오늘 시간 어떠세요? 그럼 오늘 당장 만날까요?" 했습니다. 나야 마다할 이유가 어딨겠어요? 그래서 "응, 난 상관없어. 나는 집에 도착했어"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럼 제가 얼른 집에다 차 갔다 놓고 선배님도 동네로 갈게요. 만수역으로 가면 되지요?" 했습니다. 정확하게 한 시간 후에 전철을 탔다는 카톡이 도착했습니다.
둘 다 저녁 식사 전이라서 밥을 먹을까 하다가 그냥 요기도 하면서 술 마실 수 있는 술집을 찾았어요. 몇 군데를 둘러보다가 소주를 못 마시는 그녀를 위해 집 근처 '인쌩맥주'에 들렀어요. 그곳에서 밀린 얘기들, 이를테면 직장 얘기, 고민 얘기, 앞으로의 계획,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 등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간지러운 얘기 등을 하면서 젊은이들처럼 꽁냥거렸습니다. 오랜만에 참 즐거웠어요. "술은 정말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 그 맛이 참 달라요. 오늘 너무 기분 좋아요."라고 그녀가 말했고, 나는 또 그 말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맥주를 둘이서 8잔을 마셨는데도 취하지 않더군요. 안주는 닭날개와 닭다리, 감바스, 치즈볼을 먹었는데, 제법 맛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나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그녀와 함께 베스킨라빈스에 들렀고, 역 바로 앞의 이자카야 '수작'에서 간단하게 꼬치구이를 안주로 2차를 했습니다. "아, 오늘이 금요일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는 그녀에게, 나는 "금요일에 또 보면 되지 뭐"라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그녀도 "그럴까요?" 하며 웃었습니다. 그렇게 유쾌한 시간을 보내다 아쉽지만 내일 둘 다 출근해야 해서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엘리베이터와 개표구 앞에서 두 번의 입맞춤을 천연덕스레 한 후 헤어졌습니다. H는 환승역인 시청역에서는 직접 전화를 했고, 집에 도착해서는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가슴 뛰는 봄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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