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아들, 인천으로 발령나다 본문
오전에 병원과 약국에 들러 처방전과 혈압약, 고지혈약을 받고 나왔을 때만 해도 비 내렸는데, 점심때쯤 되니 날이 개었다. 역시 이번 주도 비는 내렸다. 두 달 동안 비가 없던 주가 단 한 주도 없었다. 예보에 의하면 금요일쯤에도 비를 만나게 될 것이다. 병원에서는 로비를 가득 채운 많은 사람 때문에 놀랐고, 처방전을 받아 들른 약국에서는 나의 물건 구매 행태에 대해서 놀랐다. 요즘 백신 접종 때문에 병원마다 사람이 북적인다. 나는 진료받으러 온 사람인 줄 알고 다음에 다시 올까 생각했는데 이미 접종을 끝낸 사람들이었다. 이상 증세가 나타나는지를 보려고 접종 후에 한동안 대기하다 가는 모양이었다.
약국에서는 충동적으로 손목 보호대를 구매했다. 의료기기로 승인된 보호대라서 만팔천 원이나 했다. 크기를 확인하지도 않고 계산부터 하려고 했더니 약국 직원이 직접 착용해 보고 크기를 결정하라고 조언했다. 대형을 착용해봤더니 다소 헐거웠다. 결국 중형으로 구매했다. 매번 나는 물건을 충동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매장에 직접 나가 옷을 살 때도 이것저것 여러 종류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구매하는 게 아니라 처음 눈에 들어온 옷이나 매장 직원이 권하는 것이면 그냥 사 들고 나오곤 한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는 사이즈나 디자인에 대해 후회한다. 저주받은 쇼핑 행태다. 효용을 높이려면 심사숙고가 필수다.
아들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부천지원으로 갈 줄 알았는데, 인천 본원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아들의 소망대로 일이 풀린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평소에 아들을 예뻐하던 끝발(?) 있는 상사가 직접 인천에 전화를 걸어 ‘힘’을 써주었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고 아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젊었을 때부터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는 건 아들에게 좋지 않은 인식을 키워줄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축하한다고 말을 하기에 앞서 몇 마디 조언했다. 다행히 아들도 내 말뜻을 알아듣고 수긍해주었다. 그러면서 어차피 인천지법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사고 아들의 고향이 인천이기 때문에 어려운 청탁은 결코 아니었을 거라며 부언했다. 아비의 쓴소리를 이해해 준 아들이 대견했다. “원룸을 좀 알아봐 줄까?” 했더니, “1억 내외에서 알아보되 너무 헐하고 오래된 곳은 배제하세요.” 했다. 그러고는 “인천에 가면 자주 집에 찾아가고 아빠랑 술도 마시고 할게”라고 밝은 목소리로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참 고맙고 정겹게 느껴졌다. 게다가 군산을 빨리 떠나기만을 바랐는데, 막상 전보가 결정되고 그곳을 떠나려 하니까 함께 했던 직원들과의 추억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지더라는 말도 했다. 학생 신분으로 캐리어 하나 달랑 끌며 물설고 낯선 곳에 처음 왔을 때의 그 막막했던 순간이 떠올라 감개무량하다며 자신이 생각해도 스스로 참 대견한 마음이 든다고도 했다. 마음이 참 맑은 아이다. 다시 또 할머니의 기도를 생각하며 늘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 아비의 잔소리를 보탰는데도 “응!”하며 밝게 대답하는 아들이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지 모르겠다. 심지어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말하는 아들에게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무튼 젊은 나이에 계획했던 대로 일이 풀려가는 건 할머니의 기도가 8할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들도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아주는 아들이 나는 고맙고 대견한 것이다. "엄마, 나 역시 무척 고마워하는 거, 알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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