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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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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놀랍고 반갑고 안타깝고

달빛사랑 2021. 6. 17. 00:14

종일 집에 있다가 오후에 다인아트 윤 대표에게 연락을 받았다. 부탁할 게 있다며 5시쯤 만나자고 했다. 어차피 오늘 저녁 6시 30에 다른 약속이 있어서 구월동 커피숍에서 윤 대표를 만났다. 윤 대표는 나를 만나자마자 두툼한 서류 뭉치를 테이블 위에 꺼내놓았다. 재작년에 작고한 표신중 선배의 원고 뭉치였다. 서너 달 전에 책을 냈으면 좋겠다며 표 선배의 형수가 가져온 원고였다. 그동안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최근 형수가 다시 연락해 와서 올 표 선배의 기일에 맞춰 책을 발간해 달라고 부탁해 온 모양이었다. 윤 대표는 나에게 제목 정리와 교정을 부탁했는데, 표 선배와는 나도 인연이 깊어서 바쁘지만 시간을 내보겠다고 했다. 지인의 유고를 정리하는 일은 여러 모로 어려운 일이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윤 대표와 헤어지고 난 후, 형진 형과 후배 정금을 만나러 오랜만에 갈매기에 들렀다. 6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형진 형은 이미 와 계셨고, 늘 내가 앉던 자리에는 혁재가 앉아 보고 싶던 반가운 얼굴, 조구 형과 함께 술 마시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 잠깐 나도 합석해 막걸리 두어 잔을 함께 마셨다. 두어 달 만에 만났지만, 이내 들어가셔야 해서 무척 아쉬웠다. 술기운 때문일까, 형의 눈빛이 약간 슬퍼 보였다. 하긴, 형에게 말을 하진 않았지만, 술 마실 때마다 형의 큰 눈을 보면 매번 슬퍼 보였던 게 사실이다. 막 일어나려다가 내가 도착하자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며 형은 막걸리 한 병을 더 시키셨다. 두어 잔 마셨을 때 후배가 도착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겨 앉아야만 했다. 얼마 후 형도 자리에서 일어섰고, 배웅하기 위해서 나도 밖으로 나갔다. 헤어지기 전 형은 “계봉 씨, 악수나 한 번 합시다.” 하며 손을 내미셨는데, 그 손이 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웠는지 마음이 울컥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이별하는 기분이었다. 부디 건강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나도 얼른 예전의 컨디션을 회복해서 형과 다시 즐겁게 술 한잔하는 날을 가져야 할 텐데……. 이놈의 코로나는 언제라야 물러갈까 모르겠다.

 

그나저나 혁재는 오늘도 이미 낮부터 취해 있었고, 목소리도 높아져 있었으며, 속말을 마구마구 뱉어내고 있었다. 눈빛도 이전과 달라 보였다. 조구 형이 귀가하시고 얼마 후 근처에서 독서실 하는 성재가 들어왔는데, 성재의 정치적 태도를 지적하는 혁재의 고성(高聲)으로 인해 술집 안은 일순간 정적이 흐르기도 했다. 옆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던 우리 일행도 깜짝 놀랐다. 심지어는 술잔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누군가에게 역정을 내기도 했는데, 혁재를 잘 아는 형진 형도 고개를 갸웃하며 “확실히 오늘 본 혁재 씨의 모습은 무척 낯서네.”라며 걱정스레 말했다. 술꾼들이 술 마시다 취하는 것이야 흔한 일이겠지만, 특별한 자극이나 시빗거리도 없는데 화를 내고, 술잔을 앞에 놓고 혼잣말을 하는 혁재의 모습은 확실히 낯설었다. 무언가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가슴속에서 자꾸만 그를 격동시키고 있는 모양이다. 분명 혁재의 몸이 그의 음주 습관을 더는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를 오래 지켜봐 온 나로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혁재는 내게 흔한 동생 중 하나가 아니다. 영혼의 친구이자 평생의 동반자라 생각하는 후배다. 그래서 더욱 요즘 혁재의 취한 모습이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교육청 관할 인천광역시 중앙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정금이는 후배 이현식의 아내다. 나이에 비해 무척 동안이고, 매사에 적극적인 후배다. 두어 달 전, 점심 먹으러 가다가 교육청 앞에서 우연히 만났다. 형진이 형이 일하는 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실도 교육청 근처에 있다. 점심 먹으러 가다가 가끔 두 사람을 만난다. 오늘 약속도 그렇게 거리에서 만나 잡은 약속인데, 오래전에 잡았으나 코로나가 심해져 한번 연기한 바 있다. 추진력이 갑(甲)인 정금이가 결국 성사시킨 만남이긴 한데, 안타깝게도 내가 술을 멀리할 때라서 약간 부담을 느끼며 갈매기로 나갔다. 술보다는 안주로 저녁을 대신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술꾼의 음주란 어디 그런가. 많이 먹게 될까 봐 소주를 마셨는데, 한잔이 들어가니 몸이 술을 불러들였다. 다행히 정금이도 그리 대주가 아니라서 형진 형이 송명섭 막걸리 두 병을 마실 때, 그녀와 나는 소주 세 병을 둘이서 나눠마시고 술자리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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