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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다시 또 한 명의 시인 하늘에 들다 본문

일상

다시 또 한 명의 시인 하늘에 들다

달빛사랑 2021. 6. 7. 00:58

 

오늘도 빗방울 드문드문 날렸다. 4월부터 딱 한 주를 제외하고는 매주 비 내렸다. 많게는 사나흘, 적게는 이틀. 이곳의 봄 여름은 이제 더는 우리가 감각으로 혹은 기억으로 알고 있는 그 봄과 여름이 아닌 듯싶다. 이런 변화가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될지 해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본래의 루틴을 잃어버린 기후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만은 명백하다. 무엇 때문에 이런 변화가 야기되었는가를 묻는 건 어리석은 질문이다. 자연이 지닌 본래의 리듬이 깨어진 가장 큰 이유는 분명 인간의 탐욕 때문일 테니까 말이다. 비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파괴된 자연이 베푸는 비 오는 날의 감상을 어떻게 마냥 좋아할 수만 있겠는가.

 

오전, 교육감 수행 비서 P가 급한 표정으로 내 방을 찾았다. 며칠 후 모 동문협의회 워크숍에서 교육감이 인사말을 해야 하는데, 직접 참석은 못 하고 영상으로 대신하게 되었다며 인사말 원고를 부탁했다. P 비서는 “교육감이 특보님의 원고를 좋아하세요.”라고 말하며 사람 좋게 웃었다. 11시에 영상 촬영이 예정되어 있는데, 그때까지 원고 작성이 어려우면 촬영 시간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빠듯하긴 하지만, 한번 써 볼게요.” 하고 20여 분 정도 걸려 1분짜리 원고(A4 용지 한 장)를 완성해 비서실로 넘겼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해당 동문협의회는 인천지역 고등학교 중 개교한 지 20년이 넘는 고교 동문들만의 연합체였다. 각 학교 동문회장들의 면면은 무척 화려했다. ‘이러니 동문회 모임에도 시장과 교육감의 인사말을 요구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출직 단체장들은 선거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어서 이런 소소한 모임의 인사말조차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양한 단체들은 공무에 바쁜 시장이나 교육감, 시의회 의장 등에게 인사말을 당당하게 요청하는 것이다. 급(級)이 높은 공직자들의 인사말을 통해 운영진들은 자신들의 조직 내 위상은 물론 모임의 격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또 한 명의 시인이 하늘에 들었다. 문인수 시인, 나는 그의 시를 사랑했다. 서정적이면서도 늘어지지 않고, 감각적이면서도 요즘 젊은 시인들의 사변적인 시들처럼 난해하지 않으며,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을 늘 잃지 않았던 따뜻한 시인. 오래전부터 신장 투석을 해오느라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늘 밝게 웃으며 주변을 환하게 만들었던 명민한 시인. 하늘이 착한 시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일찍 데려간 게 틀림없다. 이제 그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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