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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올라프처럼 녹아 내린 날ㅣ많은 일을 처리했다 본문

일상

올라프처럼 녹아 내린 날ㅣ많은 일을 처리했다

달빛사랑 2020. 6. 9. 20:48

 

 

오전, 은행에 들러 노령연금을 찾아 엄마에게 드리고, 운동을 가려다 너무 더워 그만뒀다. 6월 날씨치고는 너무 뜨거웠다. 날씨가 미쳤다. 6월에 34도라니, 뭔 놈의 날씨가 이렇듯 개념이 없는 것인지. 두 시에는 문화재단 직원과 미팅이 있어서 민예총 사무실에 들렀다. 마침 오늘 섬 사업과 관련한 활동가 세미나가 있어서 사무실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북적임이었다. 싫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예정된 일정대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준비하는 활동가들의 표정만큼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얼마 전 이사회에서는 혁신위원회의 권고가 반영되도록 정관을 개정했는데, 법인체의 정관 개정을 시에 보고하기 위해서는 이사들의 인감과 서명이 필요했기 때문에 재단 직원은 일일이 이사들을 찾아다니며 도장을 받고 있었다. 내 도장을 받아든 재단직원은 위폐검사원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개정된 정관의 각 페이지마다 간인(間印)을 했는데, 도장 찍는 시간만 꼬박 10분이 걸렸다. 연속된 문서 안에 다른 문서가 임의로 삽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절차겠지만 무척 피곤한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다른 방식의 안전장치는 없을까.

 

사실 관에서 하는 일 중에는 간소화해야 할 일이 부지기수다.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공문들도 좀 문학적으로 썼으면 좋겠다. 그 일본식 어투와 한자식 표현들, 너무 밥맛이다. 판사의 판결문이나 검사의 기소장은 또 어떤가. 보통사람은 통 알아듣지도 못할 표현투성이다. 자신들의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빗나간 권위의식이거나 선민의식에 다름 아니다. 촌스럽고 유치하다. 그런 멘털리티로 운영되는 조직은 한결같이 권력을 남용하고 국민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적폐로 전락한다. 슬프지만 필연이다.

 

세 시에는 중구청 사회교육팀장을 만나 글짓기 심사 결과와 심사평을 전해줬다. 돌아오는 길, 그늘만 찾아 걸었는데도 땀이 어찌나 쏟아지던지 ‘겨울왕국’의 올라프처럼 내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6월 날씨에 너무 엄살과 너스레를 떠는 게 아니냐고 타박하겠지만 적어도 오늘 날씨는 그랬다. 미쳤다. 허기도 지고 해서 신포순대에 들러 순대국 한 그릇을 사들고 왔다. 목욕하는 사이에 엄마가 뚝배기에 순대국을 옮겨 담아 끓여놓으셨다. 언제 먹어도 이집 순대국은 정말 맛있다. 7천 원의 행복을 만끽하고 잠시 쉬다가 한 시간 가량 낮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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