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수도국산 번개 모임 본문
부처님 오신 날, 후배 시인들과 송림동 조 시인 집에서 오랜만에 회동했다. 후배 조가 수도국산 아래에 방 두 칸에 텃밭이 있는 집을 작업실 용도로 얻었기 때문이다. 시골 출신인 후배 조는 도시에 살면서도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작가회의에서 엠티나 수련회를 가게 되면 식사 당번은 늘 그 후배가 자청했고 길을 가다가도 먹을 수 있는 나물이나 열매가 눈에 띄면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와 식사 시간에 반찬으로 만들어주곤 했다. 바다나 섬에 갔을 때는 해초를 비롯해서 조개와 굴 등을 귀신처럼 발견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우리에게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그것들이 조 시인에게는 “나 여깄어요”하고 손을 흔들어 대는 모양이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조직의 살림꾼'이자 어미새였다.
갈매기에 앉아서 막걸리 반병 정도 마시고 있을 때 연락을 받고 움직였기 때문에 일행 중 내가 가장 늦게 합류했다. 내가 도착하자 후배는 소녀처럼 환하게 웃으며 집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혼자 살기에는 제법 공간이 넓은 집이었다. 정동향 기역자집이었는데 두 평 남짓한 텃밭에서는 이미 보리 한 무더기(관상용으로 심은 듯)와 머위, 파와 고추 모종이 자라고 있었다. 마당으로 내려가는 처마 아래에는 달덩이 같은 하얀 등을 달아놓았다. 비 오는 날 그 등을 켜고 처마 아래 탁자에 앉아 술을 마시면 기가 막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이 휘영청 뜨는 날이면 마당 위 도화지 같은 하늘 위로 수묵화 같은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후배가 달떠서 너스레를 떨 만했다. 나는 후배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도 남았으므로 과하다 할 정도로 리액션과 감동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아쉬운 것은 이미 그 집은 재개발이 확정돼서 서울 사람에게 팔린 집이기 때문에 후배가 원하는 만큼 살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후배는 1년 정도만 살아도 괜찮을 거라며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세 시간 정도 식사하고 술 마시고 담소 나누며 많이 웃다가 집을 나왔다. 조의 집을 나와 동산고 쪽으로 걸어가다가 콩나물해장국집을 만났다. 4천 원짜리 해장국이었는데 맛도 질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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