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아흔한 살 태인 씨의 소중한 한 표 본문
나는 지난 주에 이미 투표를 마쳤지만, 조금 전 태인 씨 모시고 투표장에 다녀왔습니다. 투표소는 바로 집 앞에 있는 문일여고, 투표객들이 길게 늘어서 있어 태인 씨는 10여 분 정도를 기다리다 투표했습니다 . 늘어선 사람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었습니다. 표정들이 하나 같이 결연해 보이더군요. 젊은이들(특히 인천의), 반성해야겠습니다.
투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손이 떨려서 첫 번째 종이에는 똥그랗게 찍지 못했는데 괜찮은 거냐? 두 번째 종이는 제대로 찍었는데…….”하시며 걱정하셨습니다. 아흔한 살 할머니의 심각한 표정이 어찌나 귀엽게 느껴지던지. (죄송해요 태인 씨) 기표 부스에서 다른 사람보다 한참 동안 머무르셨는데, 아마도 첫 번째 기표가 만족스럽지 않자 두 번째 기표에는 각별히 신경 쓰시느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상관없어요. 표시만 되면 돼요. 반만 찍혔어도 괜찮아요.”하고 안심시켜 드렸더니, “날씨는 참 좋다.”하시며 나와의 팔짱을 풀고 제식훈련 하듯 두 팔을 힘차게 흔들며 돌아오셨지요.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행사한 것에 대해 뿌듯해하고 계신 게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몇 번을 찍으셨느냐고 묻진 않았지만 며칠 전 “아범은 몇 번을 찍을 거냐?”라고 물어보셨으니 참고는 하셨겠지요. 특히 평생을 '바르고 의롭게' 살아오신 분이니 긴 종이(비례후보)에 '찍을' 때는 분명 현명하게 선택해서 잘 찍으셨으리라 믿습니다. 브라보, 태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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