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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 도시산책자가 꿈꾸는 미래의 도시 본문

리뷰

[서평] 한 도시산책자가 꿈꾸는 미래의 도시

달빛사랑 2020. 2. 2. 04:43

한 도시산책자가 꿈꾸는 미래의 도시

김창수 칼럼집, 인문도시도시의 또 다른 미래(2019. 다인아트)

 

1

저자 김창수 형과 나의 관계는 제법 연조가 깊다. 처음 그를 만난 것이 1982년도쯤이었으니 어언 40여 년을 지근에서 보아 온 셈이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그는 나의 동지이자 문우였고 지역 문화계의 선배이자 막역한 술친구였다. 관계의 층위가 이렇듯 다양하다 보니 한 때는 이견을 보이며 부딪치기도 했고 결국 서로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 불구하고 그는 항상 내 삶의 선배이자 활동에 있어 든든한 조력자였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또한 긴 세월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는 늘 자기가 서있는 곳에서 치열했고 벌인 사업에 치밀했으며 주변과 관계된 일에 책임을 다했다.

 

그런 그가 학문적으로나 삶에 대한 태도 면에서나 가장 완숙하고 진중했을 중년의 시간을 도시 인문학 연구에 온전히 투여해 온 연구자로서의 짧지 않은 이력(履歷)과 자료에 대한 섬세한 천착, 그리고 여전히 그의 가슴을 일정하게 격동시키고 있는 문학적 감수성을 창조적으로 버무려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최근 출간된 인문도시도시의 또 다른 미래(다인아트)가 바로 그것이다.

 

2

이 책에는 그가 민간문화연구단체인 인천문화정책연구소를 설립한 1999년부터 최근 정년퇴임한 인천연구원 재직시절까지 어언 20여 년 동안 인천이란 도시와 인천사람, 인천문화와 예술, 인천의 역사에 쏟아 부은 사랑과 고민, 고구(考究)의 흔적들이 올연하게 드러나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7개의 섹션, 122개의 주제를 꼼꼼하게 다룬 400쪽이 넘은 이 책을 통해 인천문화예술의 현주소와 현장에서 품었던 고민은 물론 현실에 대한 날선 비판, 그리고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인천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핍진한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그의 관심 분야는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역사, 지역행정, 도시재생, 환경 등 기본적인 인문학의 제() 영역은 물론 현실 정치와 지역행정에 필요한 유용한 제언(提言)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각각이 갖는 학문적, 실천적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인천의 문화지형과 도시의 미래라는 도시 인문학의 주제 속에서 유기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따라서 그가 정치와 문화, 예술과 역사, 행정과 환경 등을 각각 논술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그가 일관되게 견지하는 인천, 인문도시, 인간중심의 행복한 미래라는 핵심 주제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3

우리의 도시가 시민의 도시, 사람 사는 도시, 인본주의가 구현되는 인문도시(humane city)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라고 책머리에서도 밝혔듯이 그가 오래 고민해 왔고 현재에도 여전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화두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인문도시. 물론 그가 미래 도시의 바람직한 유형으로 인문도시를 제안하게 된 배경에는 환경파괴, 공동체의 해체, 주택과 교통 문제, 젠트리피케이션, 원칙없는 행정, 개발위주의 도시정책으로 인한 부작용, 이로 인한 시민들의 도시로부터의 소외 문제 등등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스산하고 아픈 초상이 전제되어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도시라는 개념은 저자도 밝혔듯이 체계를 갖춘 개념은 아니고 기존의 창조도시론이나 문화도시론의 합리적 핵심에 예술교육과 생활문화예술 정책의 목표를 온전히 포괄하려는 일종의 가설일 뿐이다.(7) 다만 그는 기존에 제출된 개념인 창조도시에 시민들이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춘 학습도시의 개념을 추가하고 다시 시민들이 예술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시민예술도시의 개념을 더한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인문도시를 구상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도시를 인본주의적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조망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총제적 조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문화생태계가 건강하게 작동되어야 하는데, 저자는 그 전제 조건으로 기초문화예술의 발전, 문화기반시설과 문화전문인력의 확보, 개방적 운영체계와 그 내부의 평등하고 민주적인 공동체 의식, 그리고 다양성 등을 제시하고 있다.

 

4

물론 이 책에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능태로서의 인문도시를 현실태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구상과 전망들이 제시되어 있긴 하지만 그러한 구상과 전망은 현실에 대한 철저한 진단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적 조건과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냉정한 분석이 전제되지 않은 전망은 낭만적이긴 하지만 공허한 법이다. 실천의 구체적 방법은 오직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에서만 제출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부면에 걸친 촘촘한 현실 진단은 그가 제시하는 미래 도시의 전망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준다고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제시하는 미래도시에 대한 전망으로 가슴이 뛰다가도, 문화 양극화 문제, 선언뿐인 문화 분권 문제, 문화의 공공성을 질식시키고 있는 상업주의의 문제, 매뉴얼이 시급한 근대문화유산의 재생과 보존 문제 등등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구축(驅逐), 발본(拔本)하거나 새롭게 정립해야 할 숱한 현실의 난제와 상황의 난맥들 또한 확인하게 됨으로써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었던 걸까. 저자는 이상도시에 대한 로망 혹은 도시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은 언제나 소중하다라든가, “이상 도시의 꿈을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명시적 선언과 확신을 전제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49) 그러면서 미국 애리조나 주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친환경생태도시 아르코산티를 예로 든다. 사막 위의 낙원으로 불리는 이 도시는 현존하는 유토피아 도시중 하나인데, 이곳에서는 태양열을 에너지로 활용하고 유기농법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며 차 없이 걸어 다니는 친환경적 삶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이 도시에 주목하는 것은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태적 가치의 극한을 실험해 보이고 있”(50)기 때문인데,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실험이다. 결과와 무관하게 뚜렷한 전망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열정이 있다면 우리라고 해서 실험하지 못할 게 무엇이며 설혹 아르코산티와 똑같은 결과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시행착오 속에서 의미 있는 교훈을 성과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저자는 문화예술인의 상상력이 도시의 삶 자체를 바꾼 노르웨이 리우칸 마을의 사례를 예로 들고 있다. 이곳은 해발 1883미터의 산그늘에 가려 가을부터 겨울까지 햇볕 구경을 할 수 없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안드레센이라는 설치예술가가 나타나 산 중턱에 거울을 설치하자는 황당무계한 제안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비웃던 마을사람들과 다른 예술가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고 마침내 9억 원에 달하는 모금이 이루어져 이 실험은 성공을 하게 된다. 리우칸 마을은 인공태양(거울)을 설치함으로써 어둠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관광객을 끌어들여 주민소득도 증대할 수 있었다.

 

이 두 가지 예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명백하다. 아르코산티나 리우칸 마을에서의 실험이 처음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안고 있어 그 실현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자신의 이웃과 삶터에 대한 배려와 고민의 결과”(83) 그와 같은 성공적인 결과물을 낳았듯, 저자가 꿈꾸는 인문도시 역시 우리의 조건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폐기해야 할 오류들과 보존해야 할 합리적 핵심들을 정확하게 변별하면서 꿈의 실현을 위해 매진한다면(실험을 거듭한다면), 우리 역시 그와 같은 꿈의 도시(인문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을 표백(表白)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5

저자와 나는 문학청년으로 처음 만났다. 그 즈음의 시대는 암울했고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흐르는 말속에서 비어(蜚語)를 걸러내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할 때였다. 당시 그는 소설을 썼고 나는 시를 썼다. 20대 문청(文靑)들의 풋풋함과 치기가 충만할 때였다. 만약 그때 현실의 엄혹함에 지레 주눅이 들어, 자못 비장했지만 다소 거친, 미처 정제되지 않았을망정 미래에 대한 꿈꾸기를 포기했다면 아마 저자와 나는 40여 년 가까이 이렇게만나오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아는 그는 늘 꿈을 꾸거나 만들거나 심지어는 빌리기조차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듯 꿈과 동행하며 오랜 세월을 통과해 온 그가 다시 또 자신의 새로운 꿈을 구상하고 구체화하고 그 과정의 일단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오래 전 서로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는 그의 꿈을 믿기로 했다. 우리가 이룰 미래의 도시, 인문도시의 활기찬 거리를 함께 산책할 날을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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