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영화를 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 본문
[줄거리]
미래의 지구, 인류는 초자력 병기의 사용으로 인해 파멸하게 되고 소수의 인간들만이 살아남게 된다. 코난은 '홀로 남은 섬'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자연 그대로의 소년으로, 어느 날 표류해 온 라나를 구해주게 된다. 원래 하이하바 섬에 살고 있던 라나는 태양 에너지의 비밀을 캐려는 레프카에게 쫓겨 도망 오게 된 것으로, 처음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괴로워하지만 코난과 할아버지의 배려로 밝은 웃음을 되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라나는 다시 레프카 일당에게 붙잡혀 인더스트리아로 끌려가게 되고, 이 와중에 할아버지는 중상을 입어 끝내 숨지고 만다. 코난은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섬을 떠나 우연히 만나게 된 호적수이자 친구인 포비(지무시)와 함께 라나를 구하러 인더스트리아로 가게 되고, 지하에 숨어 사는 반체제 사람들과 함께 레프카를 타도하는데 앞장서게 되는데...
눈비 오는 일요일, 일본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을 유튜브를 통해 감상했어요. 그의 다른 작품을 보고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시 한 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한 나의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지요. 일단 그의 (초기) 작품들 속에는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문명이 파괴된 디스토피아적 현실과 그것을 구원(극복)할 유일무이한 해결책인 환경(자연)에 대한 천착이지요. 그리고 하야오 감독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대개가 소년 소녀들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독 입장에서는 기성세대가 환경파괴와 문명의 몰락을 촉진한 주역들이고 따라서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신을 떨쳐버릴 수 없었을 겁니다. 기성세대는 대체로 폭주기관차처럼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주체들로 묘사되는 건 당연하지요. 물론 문제의식을 지닌 어른들이 등장하긴 합니다만 그들은 대체로 조력자이거나 부수적인 캐릭터일 뿐이고 작품 속에서 사건을 해결하고 희망을 제시하는 것은 언제나 소년 소녀들입니다. <미래소년 코난>,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벼랑 위의 포뇨>,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 등 작품성과 대중성(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모든 작품들이 그렇습니다. 오로지 환경이 파괴된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극복하고 황폐화된 자연 위에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주체는 때 묻지 않은 소년 소녀들이어야 한다는 감독의 고집스런 생각이 투영된 결과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특히 오늘 감상한, 비교적 초기작품인 <미래소년 코난>에 형상화된 미래 사회의 모습은 그야말로 원시 공산사회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모두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필요한 것은 서로 교환하며 살아가지요. 이 작품에서도 물론 어른들이 나오긴 하지만 주민사회를 추동하는 주된 노동력은 소년 소녀들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코난이 (내가 본 것은 52부작 텔레비전 판) 극장판으로 만들어진 것은 1978년입니다. 시기적으로 일본의 70년대는 1968년, 일본 사회를 강타한 전공투를 중심으로 한 급진적인 학생운동의 여진이 남아 있을 때였고, 아울러 지식인 사회에 자연스럽게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은 물론 사회주의나 아나키즘 등 진보적 이념이 스펀지에 물 배듯 스며들 때였습니다. 당시 이십대였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역시 이 도도한 시대적 격랑을 피하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그의 예술가적 감수성과 작가적 상상력은 오히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자신이 견지해야 할 세계관을 확실하게 정초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소년들조차 재미를 느끼고 교훈도 일정하게 얻을 수 있는 표면적 감상과, 좀 더 다채로운 배경과 분석의 준거들을 가지고 의미들을 찬찬히 고구해 보는 심층적 감상, 이렇게 감상이 투(two) 트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가족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갖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이면적으로는 그의 진보적이고도 급진적인 세계관이 곳곳에 녹아 있는, 이념영화로서의 측면도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은 감동의 층위가 다채로운, 그야말로 ‘볼(분석할) 맛 나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현재 k-pop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 한류가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 일정 부분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일본 애니메이션 만큼은 여전히 넘기 힘든 성곽이라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그의 아들이 물려받은 후 범작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버벅거림은 하야오 감독을 사랑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하야오를 만나는 시간은 늘 즐겁습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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