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김수영 시인의 산문을 읽다가 문득.... 본문

리뷰

김수영 시인의 산문을 읽다가 문득....

달빛사랑 2020. 3. 16. 11:26

 

 

김수영 전집 중 산문 모음집을 읽고 있는데, 읽으면서 과연 김수영이 전문 문학인을 포함해 시를 사랑하는 뭇사람들에게 지금과 같은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받을 만큼 위대한 시인인가 하는 것에 자주 의문을 갖게 된다. (물론 내 독해 능력이 일천하기 때문에 비롯된 필연적 오독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의문은 문장과 문맥이 어려운 글들에게서만 느낀 게 아니라서 좀 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할 듯 싶다.) 

 

물론 전집이기 때문에 자기 세계를 구축한 이후의 글들뿐만 아니라 여물지 못한 감성과 시에 대한 방황과 모색기의 불안한 감정들까지 연대기적으로 정리해 놓은 탓에 이런 혼란스런 의문이 드는 것일 텐데,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태도와 여성을 비하하는 태도는 매우 거슬린다. 또한 고집불통에 주사가 심하여 대인관계도 그리 원만한 거 같지 않아 보였는데, 만약 오늘날 이런 태도를 문단 안팎에서 보였다면 그는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혹은 대중들의 입소문 속에서 마녀사냥 당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의 구체적 삶 속에서 발현되었다는 시들도 그 완성도가 사실 천차만별이다. 그런데도 이 시인이 지금과 같은 광휘를 획득하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일단 산문의 경우, (지금까지 내가 읽은 것들은) 삼사십 대 시절에 쓴 글이 무척 많다. 무엇보다 전쟁과 포로수용소의 끔찍했던 경험과 상처가 미처 지워지기도 전에 쓴 글들이 상당수다. 이런 그의 존재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오늘의 내 기준으로 그의 산문을 대했으니 당연히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의문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은 그의 시 정신과 산문의 본령이 나타나기 전에 쓴 글들만 읽은 셈이다. 물론 그가 사망하기 3~4년 전에 쓴 글들도 읽어보긴 했지만 주제 분류에 있어 일상과 현실항목의 글들만 읽었으니, 앞으로 그의 시론과 관련된 글을 읽게 되면 나의 의구가 다소 해소될 것이라 믿는다.(아니 믿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수영은 완성형 시인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와 모색을 시도했고, 현실과 문학의 관계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탁상의 시론이 아닌, 실천적 지식인의 시론을 만들어 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그 시론에 입각해서 쓴 시들이 그의 세계관과 자신이 말한 시론에 온전히 부합하는지 어떤지는 비평가들이 판단할 몫이겠지만, 그의 몇몇 작품들은 확실히 그 이전 한국문학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감수성의 시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의 고민은 진행형이지 완결된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시론이나 시 역시 나름의 한계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김수영 본인도 자신이 신격화되거나 자신의 시가 화석화 되는 것은 경계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훌륭한 것은 전범이 될 만한 시론과 시를 만들고 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거나 그것과 타협하지 않고 치열하게 대결하려는 지식인으로서의 반성과 신독의 모습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성을 갖는 것이다. 김수영 이후의 시인들은 그의 시를 흉내낼 게 아니라 그의 치열한 비판정신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수영의 삶과 시 세계를 조망한다면 앞서 이야기했던 김수영에 대한 나의 비판적 의문들도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는 나의 선배 시인이자 자신에게 엄격했던 보기 드문 실천적 지식일 뿐이지 내가 가야할 시의 궁극의 도달점은 아니다. 그는 그의 시를 썼던 것이고 나는 나의 시를 쓰면 되는 것이다. 그 역시 완전무결한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류와 패착을 거듭했던 것이고, 게다가 그 글이 쓰일 당시의 상황과 그의 존재조건, 나이를 생각하면 60을 바라보는 내가 굳이 이러고도 이 사람이 위대한 시인이란 말이야?”라는 실망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만난 글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 어설펐던 시절의 글이었고, 시 또한 완성된 형태로 제출된 게 아니고 끊임없는 모색 속에서 점차로 자기만의  색깔을 갖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