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핀이 나간 후배를 만나다 본문
내가 가끔 쓰는 표현 중 ‘핀이 나갔다’는 말이 있는데 상대를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로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고 범인들과는 다르게 사고가 엉뚱하거나 행동이 자유롭고 어떤 한 가지에 들려(憑) 있는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나만의 표현이다. 혹자는 이들을 ‘꼴통’ 혹은 ‘4차원’이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이런 사람들은 대개 고집이 세거나 자존심이 강하고 예술가적 기질이 농후하다. 그런 ‘핀 나간’ 지인들이 내 주위에는 무척 많다. 가깝게는 자유로운 영혼인 사랑하는 후배 오가 그렇다. 그리고 오늘 만난 후배 황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 모 문화예술 기관에서 본부장을 하다가 임기를 마치고 재계약 없이 야인이 된 후배인데, 나이와는 다르게 무척 앳되지만 또 나이만큼이나 경력이 화려하다. 이 친구의 특징은 조곤조곤 말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묵직하게 뼈 때리는 직언을 자주 하는 친구인데, 그런 말을 할 때조차 방실방실 웃는다. 그래서 표정이 늘 밝은 것과는 달리 적들이 많다. 일에 대한 욕심도 많고 자기 삶에 대한 뚜렷한 비전도 있지만 그 많은 적들 때문에 가끔 상처를 받기도 한다. 물론 그 상처는 내상까지는 아니고 가벼운 경상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 좋은 기억을 깊이 쌓아두는 성정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향후 계획과 관련하여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와 한 달 전에 잡아 놓았던 약속이 오늘 만남이었다.
막걸리 4병을 나눠마셨지만 후배는 전혀 취하지 않았고, 떨어져 나간 핀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으며 시종일관 웃으며 예의 그 ‘조곤조곤’ 모드를 유지하면서도 주변의 모든 상황들에 대한 논평과 거리두기를 시전하고 있던 후배가 나는 부러웠다. 무엇보다 젊음이 부러웠고 계획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가 부러웠다.
날이 많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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