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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민예총, 이제는 초심을 생각할 때-이사회 유감 본문

일상

인천 민예총, 이제는 초심을 생각할 때-이사회 유감

달빛사랑 2019. 11. 13. 23:30

다소 우울한 이사회였다. 수능을 앞두고 현직 교사인 두 명의 이사가 불참을 했고 날은 갑자기 몹시 추워졌으며 다뤄진 안건도 무거운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앞으로 시비지원방식이 대폭 수정될 모양이다. 지금까지는 예총과 민예총 등 13개 기간단체 중심으로 지원했던 시비를 앞으로는 법인 등록한 문화예술단체 모두에게 공모를 통해 사업 신청을 받은 후 전문가의 심사를 통해 최종 지원을 결정하겠다고 인천시가 밝힌 모양이다.

 

얼핏 문화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지원의 형평성을 실현하려는 모양새를 갖춘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원방식의 변경에는 시 정부의교묘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 동안 예총의 노회한 예술가들과 그들의 도를 지나친 욕망, 민예총의 정치적 성격에 부담을 갖고 있었지만 역사성이 만만찮은 두 단체의 도움 없이는 지역에서 그럴듯한 협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한 시정부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비를 지원했을 것이다. 정치적 성격이 다른 광역단체장들이 근소한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돼 온 정치 현실을 고려할 때, 당선 전이든 당선 후든 각각의 후보들은 자신들의 시 정부 장악 혹은 진입을 도와줄 문화 부대의 역할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당선이 되었을 때는 안정적 시정을 위한 문화 파트너로서, 떨어졌을 때는 다음을 기약하기 위한 지원부대의 확보 차원에서 문화예술인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배치해 두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선거 국면을 활용해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타락한 문화예술인의 자발적 '투항' 역시 문화와 예술의 정치적 예속화를 가속화시킨 하나의 요인이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 면에서도 최대 조직인 인천예총 측에서 공금 횡령이나 지원금 유용 등 부도덕한 자충수를 반복하는 바람에 인천 문화예술계 전체가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주도권 회복의 적기로 판단한 시정부는 예술단체들에게 가장 민감한 지원금을 무기로 양대 문예조직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숨은 의도로 지원방식을 변경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원 단위를 13개 기간단체에 한정하지 않겠다는 계획은 문화민주주의의 확대나 예산 배분의 형평성, 사업단위의 다양화 등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를 내걸고는 있지만 기실 그 배경은 덩어리 큰 기존 단체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문화예술 사업의 주도권을 시 정부가 독점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의구심이 사실이든 기우든 어쨌는 변화의 시기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할 때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적어도 진보 문예운동을 표방해 온 인천민예총은 시비 지원 규모의 축소와 배분 과정에서의 소외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애초의 설립 목표를 확인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돈을 받는다면 받는 만큼 유통의 근원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 돈의 속성이다. 언제부터 민예총이 시비 지원의 규모에 일희일비 하며 사업의 지속성에 의문을 품어왔단 말인가. 당장 사무처장은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질까 봐 볼멘소리를 하고 있지만, 우리가 실력으로 시스템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문제 제기하고 감시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 바뀐 시스템 속에서 살아날 가능성이 난망하다면 시스템을 깨버리거나 우리가 그 시스템에서 나와야 한다.

 

사실 현재까지 민예총에서 진행해 온 사업 방식으로 공모에 임할 경우, 심사에서 제외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관에서 원하는 사업은 전시성이 강한 사업이다. 사업의 의미와 가치 차원의 문제는 그들에게는 후순위다. 이슈포럼이나 평화축제, 황해미술제, 잡지발간 중 시 정부에서 요구하는 전시적 성격이나 다중의 청중 확보를 만족시킨 사업이 하나라도 있었던가. 우리는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량적 성과를 무시하고 사업을 추진해 왔지만 이제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시민의 세금으로 지원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바뀐 지원방식 속에는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보는 하나다. 시 정부의 요구에 부합하거나 시혜적인 지원비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맞춤형 사업을 선별적으로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이번 기회에 시비 지원이 끊기더라도 정책개발, 시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제기, 지역의 노동자 민중적 사안에 적극 결합하기 등 민예총만이 할 수 있는 날선 사업들을 공세적으로 진행할 것인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 안일했고 무사한 일상에 안주해 왔다.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이나 제3지대 예술가들이 민예총에 쉽게 결합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을 품을 수 있는 신선함과 참신한 상상력이 민예총에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예총이나 민예총을 기득권에 안주한 문화예술집단, 다시 말해 적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못 온 것이 아니라 안 온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멸의 시간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 순응할 것인가?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이번 기회에 민예총의 존립의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초심을 회복하기 위한 대회전을 치를 것인가? 시에서는 그래도 최소한의 경상비는 보전해 주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고 하던데, 사업은 발목 잡겠지만 사무실은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그러한 발상이 나를 더욱 모멸스럽게 만들었다. 시효가 다 된 조직은 깨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 깰 수 없다면 우호적인 않은 현실과 한 판 큰 싸움을 벌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바로 그 싸움을 준비할 때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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