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오늘은 입동(立冬) 본문
갑자기 추워졌다. 입동(立冬)이란 절기가 이름값을 한 하루였다. 예고 없는 추위는 당혹스럽다. 입동도 입동이려니와 대학입시가 가까워오면 유순하던 날씨가 갑작스레 추워져 그렇잖아도 긴장한 아이들을 움츠러들게 한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일까. 하지만 입시추위는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촌스럽지만 그리 뜨악하지는 않다. 절기상 겨울로 접어들었으니 왜 갑작스레 호들갑이냐는 가을의 타박도 무색해질 수밖에. 이제 겨울은 빈틈없는 보폭으로 이곳의 모든 삶 속으로 스며들 테고 가을은 뒷정리로 분주해지겠지. 가을과 겨울이 혼재하는 뫼비우스의 시간이다. 옷깃을 여미며 겨울 앞에 선다.
최근 3주간은 정말 숨 가쁜 일정을 감당해 내야했다. 재밌고 의미 있는 일정도 있었고 의무감으로 참석한 일정도 있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일정도 있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일정도 있었다. 가끔은 애초의 생각을 뒤바꾸게 만든 일정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 모든 일정 속에서 의미는 몰라도 재미는 느꼈다. 약간의 허세도 부릴 수 있었고 더 약간의 존재감도 뽐낼 수 있었다. 알량하지만 그러한 '부림'과 '뽐냄'은 점점 사라져가는 자존감을 일시적으로나마 회복시켜주는 정서의 링거액인 거라고 나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아무튼 명함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명함을 보충하려 지갑을 열자 받은 명함들 밑에 오래 전 사놓은 복권 두 장이 포개져 있었다. 번호를 맞춰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맞지 않을 게 분명하지만 긁거나 맞춰보지 않은 복권은 여전히 욕망을 이뤄줄 잠재된 가능성이자 희망이다. 만 원으로 구입한, (내게는) 타산이 불가능할 만큼 거대한 희(욕)망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는 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가끔 당첨 이후의 되도 않을 꿈들을 그려보면서 괜스레 넉넉해진 마음으로 보내는 일주일, 유치하지만 재밌지 않은가? 삶은 생각처럼 늘 고상한 것만은 아닐 테니까. 겨울이 끝날 때쯤 복권에 당첨되면 민어나 참치를 실컷 먹어야지. 그리고 여행을 떠나야지. 푸하하, 바로 이런 상상을 당겨서 하는 일, 허황하긴 하지만 얼마나 뿌듯한 재미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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