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최은영 소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중에서 본문
이모는 동이 틀 무렵 엄마의 병실을 찾아왔다. 아직은 어두운 시간이었지만 엄마는 그 어둠 속에서도 이모의 얼굴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이모는 열여섯 살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나로 묶은 긴 머리, 검은 뿔테안경, 손수 지은 물방울무늬 여름 원피스 차림의 이모. 이모는 무덤덤한 얼굴로 인공관절 삽입수술을 한 엄마의 오른쪽 무릎에 손을 얹었다. 엄마가 이모를 바라보자 이모는 한 번 웃어 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해옥이 너두 무릎이 속을 썩이는구나. 신기하지. 너두 나이를 먹구.”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언니야.”
“너 보고 싶어 날아왔지.”
“날개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날아오나.”
“없기는. 이거 봐라.”
이모는 등에서 둥그런 부채 모양의 하얀 날개를 펼치더니 8인용 병실 천장 위를 뱅글뱅글 날아다녔다. 엄마는 날아다는 이모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모습이 꽤나 우스워서 애처럼 웃었다. 그러자 이모도 만족한 듯이 날개를 접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너 보니 좋다, 해옥아.”
“참 좋네.”
“우리, 서로 보고 살았으면 더 좋았을까.”
이모는 병실 침대에 기대앉아서 엄마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난 아직두 우리가 한참은 어린애들 같은데. 이렇게 껍데기는 할머니들이 다 됐어.”
엄마는 이모의 부드러운 손등을 만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97쪽~98쪽)
(……)
엄마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이모는 물에 닿은 비누처럼 점점 작아졌다.
“언니는 가벼워지고 있구나.”
엄마는 손바닥만큼 작아진 이모를 보며 말했다.
“해옥아, 기억해.”
몸이 작아질수록 이모의 목소리는 점점 더 깊게 울렸다.
“아무도 우리를 죽일 수 없어.”
엄마는 병실 파티션 위에 올라앉은 이모의 입 모양을 따라 했다. 아무도 우리를 죽일 수 없어. 그러자 이모는 그 가느다란 목과 작은 머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잊음 안 돼, 해옥아.”
창에서 햇살이 내려오자, 엄지손가락만큼 작아진 이모가 빛에 실려 떠났다. 엄마는 한참 동안 창에서 내려오는 햇살에 눈길을 주다가 이모의 손길이 닿았던 엄마의 오른쪽 무릎을 만져봤다. 그건 분명 꿈이 아니었다. 엄마는 보조침대에서 자고 있던 나를 깨워서 방금 어린 시절에 알던 언니가 이 방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반응이 놀랍고 한편으로 무서워서 그 일에 대해서 더 듣고 싶지 않았지만 한 번 터진 엄마의 말을 멈출 수는 없었다.(121쪽)
―최은영 소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쇼코의 미소』 중에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의 예술가(1)-작곡가 최영섭 (0) | 2019.07.16 |
---|---|
영화 '기생충'을 보다 (0) | 2019.05.31 |
존재에 대한 자신만의 사랑법 혹은 함께 지나온 시대에 대한 반성적 성찰 (0) | 2018.12.23 |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 (0) | 2018.11.06 |
2018학산마당극'놀래' 심사평 (0) | 2018.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