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영화 '기생충'을 보다 본문
익숙하거나 낯선, 혹은 더욱 정교해진 그의 영화 리얼리즘
5월의 마지막 날 즉흥적으로 극장을 찾았습니다. 얼마 전 칸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란 영화를 보기위해서였지요. 그 동안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빼놓지 않고 모두 봐왔지만 오늘 본 영화는 뭐랄까 익숙하면서도 낯선 영화였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미학과 주로 천착하는 주제의 총화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간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하나 같이 대사회적 비판을 보여준 영화들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해당 사회의 체제를 전복하는 놀랄 만한 상상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특히 ‘설국열차’에서 꼬리 칸 승객들로 상징되는 하층계급들이 물리력을 불사하며 상층계급들의 전용인 머리 칸으로 나아가는 장면들은 흡사 혁명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그 비유와 상징이 너무 직접적이라서 감독의 숨은 의도를 찾아내는 즐거움이 크진 않았지만 말입니다. 영화 ‘옥자’에서 그려낸 거대자본의 민낯과 생명성의 강조 역시 봉감독이 그간 보여 온 계급 간 대립 구도의 영화에 충실하게 부합하는 영화였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서 기존 체제를 공격하고 가끔은 그것을 전복시키는 판타지적 상상을 완성해 왔던 것이지요. 그의 정치적 지향과 일맥상통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기생충’에서는 계급간의 대립구도가 생경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는 도식성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그가 그 동안 비판하고 공격해 왔던 자본주의 체제는 더 이상 개별 단위들의 저항이나 개별적 폭력에 의해 전복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아프지만 현실적인 판단을 했기 때문일까요.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지하생활’로 상징되는 도시빈민의 삶이나 그들을 업신여기며 부를 대물림하고 있는 상층민들 모두 희회적으로 표현됩니다.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그간의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가상이든 판타지든 아니면 블랙코미디 형식을 빌렸든 하층민들이 거둔 단편적 승리의 쾌감이 전혀 나타나질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가슴이 먹먹해져서 극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헛된 희망을 보여주기보다는 불가능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것이 이후 보다 큰 싸움을 하기 위한 전제이자 효과적인 학습이라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혹여 이 글이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줄거리나 보다 구체적인 비유와 상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진 후, 보다 분석적이고 깊이 있는 리뷰를 다시 해볼 작정입니다. 하지만 나 역시 봉준호 영화의 마니아이자 한사람의 적극적인 관객이기 때문에 막 관람하고 돌아온 영화에 대한 감상이 없을 수는 없겠지요. 그래요. 나는 이 영화가 무척 슬펐습니다. 많은 장면들이 블랙코미디 같은 쓴웃음을 짓게 했고, 봉준호 특유의 정교한 카메라 앵글을 통해 다양한 상징적 메시지들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더 이상 판타지나 코미디 혹은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그대로 우리 현실을 핍진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슬펐습니다. 기존의 영화기법을 여전히 활용하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층위의 고발 기제를 시험하고 있는 그의 천연덕스러운 영화 리얼리즘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영화 속 인물에 이입된 내 마음을 원위치로 되돌려놓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가족의 잔혹사를 이렇듯 능청스럽게 보여주다니, 그는 천재이거나 새디스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니 그래서 나는 슬펐습니다. 그가 '공격'의 방식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완강해진 현실과 그 완강한 현실 속에서 오늘도 '기생충'처럼 살 수밖에 없는 허다한 존재들의 삶을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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