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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소창, 그 흰 빛에 담긴 삶의 정조와 그리움을 복원하다 본문

리뷰

소창, 그 흰 빛에 담긴 삶의 정조와 그리움을 복원하다

달빛사랑 2018. 8. 11. 15:53

 

소창, 그 흰색에 담긴 삶의 정조와 그리움을 복원하다

 

문계봉(시인)

 

인천 곳곳 그녀의 시선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로 서은미 작가는 부지런합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란 매 순간 강렬하게 인생을 음미하는 것이란 마크 리부의 말을 빌린다면 그것을 열정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겁니다. 나는 그 열정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 사람이지만 사진에 대해서는 손방입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사진전시회 서문을 부탁해 올 때는 뭔가 의도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설마 그녀가 제게 사진 미학적 해설을 부탁할 리는 없잖아요. 물론 서 작가와 내가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와 나는 표현수단이 다르긴 하지만 둘 다 세상을 그리는예술가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영역은 달라도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분명 그녀와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이 있을 거라고 나는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접점을 확인하기 위한 전제로 일단 그녀가 매진하는 사진예술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해보았지요. “도대체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포토그라피(photography)의 어원은 본래 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포스(phos)그린다를 의미하는 그라포스(graphos)의 합성어입니다. 단어의 어원만을 가지고 거칠게 정의한다면 사진은 빛을 그리는예술인 것이지요. 멋지지 않습니까. 빛으로 그림을 그리다니. 글로 그림을 그리는 문학과 무언가를 그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광학()의 총체인 카메라를 가지고 서은미 작가는 무엇을 그리려했던 걸까요. 전시회에 국한에서 생각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라져가는 추억이자 그 시대의 삶의 풍경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녀는 이 휘황한 자본의 시대에, 화려한 도시의 풍경이나 고답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제는 그야말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되어 버린 소창 장인들의 투박한 손마디와 주름진 얼굴을 카메라로() 그리려(담으려) 했던 걸까요.

 

사진은 무엇보다 시간을 담는 예술입니다. 한 시대의 시간을 분절하여 정지된 영상으로 기록하는 기록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작가가 오늘 찍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 풍경, 거리는 모두 다 나름대로의 역사성과 사실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진작가는 또 다른 의미의 역사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잔 손택(Susan Sontag)이 사진은 하나의 문법이자 시각 언어이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기능을 가지는 것이라 말한 것도 그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진작가가 무엇을 기록하려고 했을 때 거기에는 사진작가의 의도와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은 역사가로 말한다면 일종의 사관이라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객관적인 사진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피사체를 선택하는 순간 이미 작가의 가치판단이 개입하고 있는데 어떻게 객관적인 사진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말이 장황했지요? 자 그럼 좀 전의 논의를 바탕으로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서은미 작가는 도대체 왜 소창 장인(匠人)인 노부부의 일생과 그들이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평생의 작()업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선택했던) 것일까요. 그것도 빛을 그리는 예술가인 사진작가가 말입니다.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아마 그것은 그리움과 연민 때문이었을 겁니다. 빛을 갈무리하여 세상의 풍경과 인간의 삶을 다양한 모습으로 담아온 작가로서 사라져 가는 빛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그리고 그 빛이 황홀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요.

 

강화의 소창은 그 질과 생산량에서 타 도시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 유명했습니다. 수직기 앞에서 손금이 지워지도록 북을 놀리며 세상에 대한 한스러움을 씨실로 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가는 아이들에 대한 기대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날줄로 삼으며 한 땀 한 땀 피륙을 완성했을 강화의 이름 없는 숱한 장인들, 그들의 치열한 삶이야말로 기록하고 전하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서민들의 핍진한 삶이었을 것이라 서은미 작가는 여겼던 것이겠지요.

 

중장년 세대는 생생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아이가 새로 태어난 집이면 어김없이 빨랫줄에서 힘차게 펄럭이던 흰 듯 누른빛의 소청들의 몸짓을. 그것은 약동하는 생명력의 표상이었고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대이자 자부였습니다. 소창은 또한 우리네 삶의 지근거리에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도 했고, 마을을 벗어나는 친지들에게 꼭 다시 만나자는, 혹은 전도가 부디 무탈(無頉)하라며 흔드는 허다한 손들에 매달려 하늘거리던 우리들의 젖은 마음을 표상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관곽(棺槨)의 둘레에 칭칭 동여매진 채 누군가의 영별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소창은 우리가 태어나서 흙속으로 돌아갈 때까지 평생을 우리와 함께 했던 친근한 서민의 피륙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소창의 흰빛은 점점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소멸하는 것들은 모두 애잔한 법입니다. 그 사라져가는 고유한 빛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빛의 예술가인 서은미 작가는 카메라를 들었던 것이겠지요. 그것은 단순히 한 장인의 삶을 아카이빙 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를 기반으로 꾸려졌던 한 시대의 삶을 보존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사라져가는 과거의 빛을 빛의 예술가가 다시 온전한 빛으로 되살려내는 것, 되살려 추억하고 추억하며 역사적 사실로 기억하게 하는 것, 기억해서 이어받고 이어받아 당시의 화양연화 시절의 꿈들을 복원하는 것, 그것이 아마도 서은미 작가의 궁극의 바람이자 이 지난한 작업에 뛰어들게 되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무엇보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기꺼이 가장 내밀한 삶의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게 해 주신 소창 장인 이병훈, 조금례 어르신들께 머리 숙여 존경과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서은미 작가의 노고도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사라져가는 것들이 발산하는 희미한 빛 속에 담긴 소중한 가치들과 아름다움들, 그 눈물 나는 그리움들을 서 작가의 카메라가 더욱 진솔하고 핍진하게 담아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전시회,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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