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이권, <꽃꿈을 꾸다> 중 '엄니' 전문 본문
빨래 줄에 이불 홑청 빨아 널고
한 숨 푹 자고 오겠다던 엄니
장곡사 주지스님이
몇 번 바뀌어도 돌아오지를 않았다
엄니 몸에 꼬리가 자라나
개가 되어 돌아왔다는 풍문과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새가 되어 집 앞 감나무에
앉아 갔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부처를 부르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 어둠의 시간
백팔염주를 돌리며 관세음보살을
연호하는 저녁이면
엄니는 어릴 적 죽은 누이동생을 데리고
꿈속으로 들어와
새벽녘까지 머물다 갔다
엄니는 장곡사 관음전에서 잠깐
내려왔다 올라가신
관세음보살이었던 것이다-이권 시인이 시집 <꽃꿈을 꾸다> 중 '엄니' 전문(96~97)
◆◆
모친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노래한 ‘엄니’는 매우 정교하게 계산된 시적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 시다.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모친에 대한 그리움을 이동성이 빠른 ‘풍문’과 ‘소문’이라는 시어를 통해 표현한 것도 그렇고 시각과 청각의 교차를 통해서 그리움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는 점도 시인의 조어(造語)와 이미지 변주 능력의 만만찮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집이 없던 아버지에게 까치집 문패라도 달아드리고 싶다며 뒤늦게 부르는 사부곡(思父曲)인 ‘까치집’ 역시 시인의 육친에 대한 그리움이 감동적으로 드러난 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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