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2018학산마당극'놀래' 심사평 본문
미추홀 주민들의 자부심이 된 마을축제의 현장
―2018학산마당극‘놀래’ 심사평
1. 들어가며
2018학산마당극 놀래의 현장은 매번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신명의 장이었다. 어느덧 6년의 역사를 쌓아온 학산마당극은 이제 주민 스스로 만들어가는 마을축제의 전범(典範)으로서 오롯이자리매김 했음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해마다 이맘때면 도시와 마을 곳곳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축제가 열린다. 인천만 해도 마당극이 벌어지는 당일, 개항장예술축제와 부평풍물대축제가 중구와 부평구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축제 시즌을 맞아 열리는 모든 축제들은 다 저마다의 특색과 의미들을 가지고 있겠지만 미추홀구의 마당극 놀래처럼 주민들 스스로 토론하고, 조직하고, 만들고, 공연하는 마을 축제는 많지 않다. 그리고 전문 예술가들이나 유명연예인을 불러 치르는 여타의 축제들은 외형적으로 화려하고 많은 청중을 확보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축제의 결과물은 결코 마을 주민들의 애향심 고취나 지역의 문화적 인프라 구축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학산마당극은 주민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만들고 향유하는 축제이기 때문에 소박하지만 다른 축제들이 가질 수 없는 끈끈함 유대감과 가족적인 생동감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이다.
2. 공연된 작품들에 대한 짧은 심사평
주안8동 ‘인형이랑’ 팀의 ‘두 개의 집 이야기’는 인형극이다. 인형극은 금년에 첫 시도된 형식인데 어린이 관객들도 축제의 주체로 인입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마당극 현장에서는 아이들도 어엿한 관객의 일원인데 그 동안 ‘어린이 관객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인형극을 공연함으로써 놀래 마당극은 남녀노소 모든 이들이 어우러진 신명의 현장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관객의 폭을 그만큼 넓혔다는 긍정적인 면을 지적할 수 있겠다. 인형을 조작하랴 연기를 하랴, 결코 쉽지 않는 무대를 큰 실수 없이 무난하게 치러낸 진행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주안3동 주민들의(동아리 이름 ‘아이락고’) 연극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는 대사에 노래를 가미해 뮤지컬처럼 만든 작품이다. 확실히 대사만으로 진행되는 연극에 비해 훨씬 흥이 나고 주제 전달에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들이 등장해서 극의 흐름에 참여한 것도 무척 재밌는 시도였다. 또한 영상을 활용한 것 역시 극을 입체적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는데, 다만 다양한 양식들을 활용하다 보니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좀 더 압축했더라면 훨씬 깔끔한 극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용현1,4동 ‘학산아라리요’ 팀의 민요극 ‘추억의 남구에서 바람피우자’의 경우 비슷한 또래의 중장년 여성들의 호흡이 너무도 좋았다. 또한 민요를 개사한 개사곡 가사들은 주민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 주제를 효과적으로 담아내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장면과 장면이 이어질 때 약간 부자연스러웠다는 점과 민요극을 표방했으면서도 그리 많은 민요가 불려지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숭의1, 3동 ‘글보다 꽃할매’ 팀의 ‘ㄱㄴㄷ숭의동 사랑방’은 팀 이름 그대로 한글을 배우는 ‘꽃할매’들의 삶을 소재로 만든 영상극이다. 고령의 노인들에게 많은 대사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상극의 형식을 빌려 영상과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 것은 매우 적절한 시도였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자작시를 낭송할 때는 삶의 무게와 연륜에서 비롯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진솔함 속에서 확보된 감동이었다. 모든 주민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마당극의 본질을 잘 보여준 작품이란 생각이다.
학익2동 ‘개구쟁이 모난 돌’ 팀의 연극, ‘옹기종기, 우리 동네 사람들’은 소품, 영상, 음악 등이 다채롭게 어우러진, 공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었다. 특히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하는 공연은 기본적으로 매우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개연성 있는 소재와 과장 없는 연기가 그러한 점을 잘 극복하게 해주었다는 생각이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성인연기는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리고 영상을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극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다만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다 보니 극의 응집력이 다소 떨어졌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숭의2동 ‘자연청’ 팀의 연극 ‘한별이’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유일한 작품이었다. 청소년들 역시 미추홀구의 어엿한 주민으로서 그들의 삶 또한 진지하게 조명되고 작품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의 삶을 소재로 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기하게 한 것은 그것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출연자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소재로 다뤄서 그런지 연기가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웠다. 다만 대사가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학익1동 시각장애인복지관과 연계된 팀 ‘마냥’의 연극 ‘두 개의 항아리’는 무척 뭉클한 내용의 대본과 출연자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준 작품이다. 사실 시각장애인들의 공연에 대해 나는 약간의 편견이 있었던 것을 고백한다. 그래서 형식이나 연기에 있어 극적 완성도를 언급하는 건 가혹한 일이고 참가한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그러한 ‘동정’ 마인드 역시 매우 심각한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모든 출연진 중에 가장 정확한 발음으로 대사를 했고 가장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놀라웠다. 시각장애인들의 애환이 잘 그려진, 그야말로 있을 법한 에피소드를 너무도 핍진하게 보여줌으로써 극을 보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큰 감동을 준 것이다. 객석 여기저기서 눈물을 닦아내는 관객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의 땀과 노력을 추체험하는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용현1,4동 풍물단 ‘한결’의 풍물극 ‘홀로? 아니, 더불어 살기’는 풍물과 재담이 어우러진, 어떤 의미에서는 마당극의 형식에 가장 부합하는 공연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배우들의 연기는 전문가 뺨치게 수준급이었다. 재담과 재담 사이에 풍물을 집어넣어 형식적인 안정감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그건 또 한편으론 극을 단조롭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다만 경험 많은 팀답게 그러한 형식의 단조로움을 연기의 내공으로 커버하려 했지만, 전반적으로 서사가 촘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화1동 ‘복짝복짝’ 팀의 연극 ‘그 집 이야기’는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을 매칭해서 보여주려 한 것 같은데, 음향 담당자의 실수인지 사인이 맞지 않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연기와 음악의 포인트가 맞지 않아 아쉬웠다.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제 페이스를 되찾긴 했지만 내레이터를 통해 서사를 이어가다 보니 연기가 자꾸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공간을 의인화해서 삶의 의미를 천착해 보려고 시도한 것은 신선했다.
주안6동 ‘닐리리야’ 팀의 연극 ‘사람에 미추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인데, 사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소재로 할 경우, 스토리를 관객들이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서사전달에 있어 효율적일 수는 있으나 자칫 진부해 질 수 있다는 함정이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예정된 결말에 이렇다 할 반전이 없을 경우, 이러한 번안극은 잘해야 본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연극 역시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한 것 같다. 다만 손이 많이 간 소품과 배우들의 연기로 그러한 한계를 다소나마 희석시키긴 했다.
용현5동 ‘우날쓰’ 팀의 연극 ‘뭣이 중한디!’는 구세대 엄마와 신세 딸의 수다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단순한 형식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데, 주부들의 수다라는 형식은 이야기 전달의 효율성을 담보해 낸다. 그야말로 만담의 지존들이 아닐 수 없다. 단조로운 형식에서 비롯된 극적 느슨함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마지막 개사곡은 정말 좋았다. 어쩌면 그 노래를 하기 위해 앞에서 그렇게 장황스런 수다를 떤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화2,3동 ‘어수선’ 팀의 연극 ‘환경계엄령’은 한편의 전문 연극인들의 연극을 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매우 공들인 작품이었다. 소재는 새로울 게 없었지만, 소품, 무대, 음악, 분장, 배경음악, 음향효과, 배우들의 연기 모두가 수준급이었다. 연기자들의 호흡도 다른 팀에 비해 월등하게 좋았다. 작은 거 하나까지 놓치지 않은 세심한 노력의 흔적들이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촉발시켰다. 그러한 점들이 주제에 대한 설득력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본다. 가장 많은 인원이 등장한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짐 없는 연기의 조합을 보여주었다. 다만 좀 더 작품을 압축했다면 더욱 깔끔한 작품이 되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욕심 혹은 자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몇몇 장면은 불필요하게 장황했지만 마당극의 본류인 신명의 창출이란 면에서는 여타의 팀들에 비해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숭의4동 ‘치맛자락 휘날리며’ 팀의 ‘미추홀 나나니’는 무용 공연이었다. 놀래 마당극 참가작품들이 대체로 대사 위주의 연극들이라는 점에서 볼 때 무용 형식의 공연은 상당히 뜻밖이면서도 모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공연의 주제를 말이 아닌 동작을 통해서 전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극은 공연 중 관객의 호응을 유발하기 위한 애드리브가 가능하지만 무용은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특히 집단으로 무용을 할 경우, 공연자들의 일사불란한 합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순위와 무관하게 숭의4동 주민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오늘 만큼의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을 것이다.
학익1동 ‘학나래 두드림’ 팀의 난타극 ‘꿈을-드림-니다’는 일단 몸을 들썩이게 하는 감염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난타의 속성 작체가 신명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다만 타악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면 스토리가 너무 단순해보일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많은 인원이 나와서 저마다 두드릴 수 있는 악기 하나를 들고 나와 시종일관 두드리니 관객입장에서는 신명이 나지만 자칫 서사의 흐름을 리듬의 난장 속에서 놓쳐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극의 서사성을 강화한다면 난타극이야말로 현장의 관객과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많은 장점을 지닌 형식일 것이다. 앞으로 이 점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을 경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3. 나가며
몇 차례 심사를 맡아보면서 매번 느끼는 것은 확실히 마당극 놀래는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연작의 수는 작년보다 줄었지만, 작품의 형식도 다양해지고 무대에 올라와 연기를 하는 주민들의 연기력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또한 마당극이 벌어지는 무대 주변에 그 동안 학산문화원을 통해서 진행된 다양한 프로그램의 결과물들과 마당극 주체들의 작업과정을 전시물로 만들어 전시함으로써 축제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된 사진과 판화 작품들은 당연히 미추홀구 주민들이 손수 작업한 결과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점들은 문화원을 비롯한 의 축제 담당 주체들이 해당 축제를 어떻게 하면 다채롭게 만들고, 주민들의 참여를 배가시킬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한 끝에 나온 ‘영리한 시도’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당극 공연으로 한정된 ‘놀래’를 다양한 볼거리와 장르들이 결합된 시민창작예술제라는, 보다 폭넓은 구조로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일단 마련된 셈이다. 내년 행사가 무척 기다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만, 마당극 공연의 경우, 다수의 출연팀에 공연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객석을 떠나는 관객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는 점이다. 하루에 모든 작품들을 올려야하기 때문에 현재의 공연방식이 불가항력적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각 팀의 공연시간을 일정하게 제한하여 전체 공연시간을 조정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아이들과 노인 관객들에게 서너 시간의 공연시간은 부담이 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축제를 준비한 문화원 담당자들과 지역주민들의 노고에 고마움과 격려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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