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겨울'... 나의 오랜 사랑 본문
그해 겨울, 내 곁에는 <홍은동 천사>가 있었다. 가슴 속에서 말할 수 없는 벅찬 감회가 솟구쳐 올랐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단조로움을 싫어했고, 옷차림 하나에도 정서가 반영되던 시절, 나는 가난했지만 충분히 아름다웠다. 사랑에 대한 빛나는 아포리즘을 밥먹듯 술먹듯 만들어 내곤 했으며.... 천사가 있었고, 빛나는 상상력과 아름다운 신념과 뜨거운 가슴과 문학이 있어서 행복했던 시절... 아버지에겐 힘이 있었고, 분노도 있었다. 어머니에겐 포기할 수 없는 기대들과 고단한 일과, 묵묵부답이었지만.... 하나님이 있었다. 친구들은 폼났고, 선배들은 용감했다. 바람은 매서웠고, 시대는 미쳐있었다. 술과 방황과 감상과 시와 논쟁과 사랑과 그만큼의 증오와 애인들이 있었다. <그해>라고 지칭될 수 있는 모든 겨울마다 그것들이 있었다. <그해 겨울> 중의 한 겨울에 천사도 만났다. 가진 것은 오래된 위염 증상과 몇 권의 책들뿐이었지만..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갈구는 내 삶의 동력이었다.
그리고 또 <그해> 겨울의 초입에 <그들>이 죽었고, 그들을 위한 진혼굿을 했으며, 술을 마셨다. 그리고 <어떤 그해 겨울>에는 겨울이 가져다 주는 묘한 유혹에 일탈의 묘미를 느껴보기도 했다. 더 먼 과거의 <그해 겨울>에 나는 술을 배웠고, 입맞춤을 경험했고, 주변의 사물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황폐해져 가는 내 영혼과 그 영혼이 만들어놓은 내 얼굴 표정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그해 <겨울>에 여행을 했고, 신비함과 가슴떨림을 경험했고.... 얼마 후.... 내 사랑을 잃어버렸다. 그 헤어짐의 고통 속에서 더욱 성숙해진 내 영혼을 만났고 , 냉소로 얼룩진 나의 표정이 고즈넉함으로 변해가는 묘한 경험도 했다.
겨울, 아, 겨울. 가끔은 내가 사랑했고, 내가 부딪쳤던 모든 상황과 인물들은 신기루이거나 배경이었을 뿐, 진정 뜨겁게 사랑한 것은 '겨울'이라는 <조숙한 계절>이었던 것은 아니었나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제도권으로의 진입.... 회한과 두려움, 그 끝에서 살짝 수줍게 미소짓던 새로운 상황에 대한 기대감.... 내 영혼의 황홀경이자, 내 영혼의 진흙탕이었고, 또 내영혼의 낯익은 친구이기도 했으며, 내 영혼의 괴퍅한 스승이기도 했던 겨울. 사랑과 이별, 성취와 좌절, 나약함과 견고함, 진지함과 일탈, 마감과 시작.....언제나 모양은 다르지만 똑같은 무게로 다가왔던 겨울. 날선 의식도, 좌절의 비감함도, 사랑에 대한 모멸감도, 자신없음도, 부끄러움도, 모두모두 한 순간, 아니 서서히 깨끗하게...천연덕스럽게 덮어버리는... 하얀 눈을 지니고, 끼많은 여자의 간헐적 순수함처럼 전부 드러내기도 하고, 다시 전부 뒤덮어버리곤 하던 겨울의 포스.... 나는 그 계절, <겨울>과 지금까지도 동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계절의 추파를 받을 때는 불륜의 떨림을 경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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