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트리플A형의 소심한 복수 본문

현실

트리플A형의 소심한 복수

달빛사랑 2008. 12. 12. 14:16

친구 사무실에 들러 볼 일을 보고 집에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내려갔을 때였다. 오 마이 갓! 뽑은 지 얼마 안 되 보이는 위풍도 당당한 베라크루즈 한 대가 주차장 입구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닌가. 밀려오는 짜증! 가끔 개념없는 운전자들로 인한 많은 민폐를 경험했지만, 그건 정말 최악이었다. 나는 끌끌 혀를 차며 운전석 앞 유리쪽을 보았다. 그런데 연락처가 없는 거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던 차 한 대는 들리지는 않지만 욕설을 내뱉는 게 분명한 입술 모양을 하며 후진으로 다시 되돌아 나갔다. 경비아저씨는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전전긍긍하며 어딘가로 연신 전화를 눌러댔다. 자신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들어온 것 같다고, 운전자가 상식이 있으면 곧 내려오지 않겠느냐고 나의 양해를 구하며 미안해하는 것이었다.


"그래요. 기다려보죠 뭐." 하고 기다리기 시작했는데, 15분이 넘도록 기다려도 차주가 도무지 나타나지 않는 거였다. 잠시 후, 나와 비슷한 피해자(?)가 3명으로 늘고, 이내 집단 성토가 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사실 기다린 시간이 제일 짧은) 50대 아저씨는 너무 흥분해서 논점 일탈도 서슴치 않았다. 즉, 개인의 인성에서 시작해서, 대한민국의 국민성까지 거론하고, 공권력이 너무 느슨해져(여기서 공권력이 왜 등장했는지 암만 해도 모르겠지만)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는 거다. 잠시 잠깐 짜증과 웃음이 버무려진 묘한 감정의 상태를 경험해야 했다.

 

결국 그곳에 본의 하니게 갇힌 '피해자'들은 112에 신고하여 차적 조회를 부탁하기로 했다. 혹시 조회과정을 통해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 해서였다. 대한민국 경찰에게 내가 무엇인가를 부탁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잠시 후 연락이 왔다. "은색 베라크루즈 맞습니까? 휴대폰 번호는 없고, 집 전화번호가 있어 연락을 해봤는데 전화를 받지 않네요. 계속 해보겠습니다만, 어쩌죠?" 시시각각 짜증 제대로 업그레이드! 결국 나는 귀가를 포기하고, 다시 친구 사무실로 올라가기로 맘을 바꿨다. 그때 같이 있던 '공권력' 운훈했던  50대 아저씨께서 말씀하시길, "이런 차는 4바퀴 모두 빵꾸를 내놔야 돼. 그래야 다음부터 이런 짓을 안 한다구." 순간 내 맘 속에서 호시탐탐 눈치를 보고 있던 검은 망토에 삼지창을 든 뿔달린 악마가 나를 유혹하는 것이었다. "야, 4개는 아니더라도 하나쯤은 바람이라도 빼 놔라. 아니면 차키로 슬쩍 흠집을 내 놓으라고. 그건 범죄가 아니야. 정당방위, 아니, 당연한 응징이라고. 새차니까 작은 흠집에도 엄청난 짜증을 경험하게 될거야. 고소하잖아. 그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눈 질끈 감고 모종의 행동을 해야하는 순간도 있는 거라고." 글쎄... 얌체 주차족의 타이어를 펑크 내거나 바람을 빼놓는 게 공공의 이익과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적어도 그 순간 나는 상당히 마음이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기다리다 지친 아주머니 한 분과 50대 아저씨도 결국 경비에게 차주가 나타나면 연락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어딘가로 가버렸다. 


나는 종이를 꺼내, 뭔가 한 마디를 적어놓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펑크내기나 바람빼기를 할 용기(?)가 나에게는 없었다. 나는 소심한  A형인 사내니까. 처음에는 "주차 좀 제대로 하세요."라고 썼다가 좀 약한 것 같아서 "야, 이 병신아! 주차 이따위로 할래"라고 고쳤다가, '혹시 안하무인 조폭 같은 사람이 경비를 앞세워 나를 찾으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 나 원래 이렇게 산다 어쩔래?" 하고 들이댄다면? "휴우!" 한숨을 내쉬고 다시 문구를 고쳤다. "야, 이 인간아 차좀 제대로 대시오" 적어놓고 보니까 앞부분은 비칭이고, 뒷부분은 존칭인 이상한 문구가 되었다. 나의 행동을 계속해서 보고있던 경비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저쪽으로 가서 담배를 태워 물었다. 결국 나는 다음과 같은 최종 문구로 소심한 복수를 했다고 자위하며 친구의 사무실로 다시 올라갔다. "와우! 주차 참 엿같이 했네요^^" 도대체 문장 뒤의 웃음 이모티콘('^^')은 또 뭔지. 에효, 나는야 소심한 트리플 A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