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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한 통의 전화도 없던 주말, 행복해 (1-25-토, 맑음) 본문

일상

한 통의 전화도 없던 주말, 행복해 (1-25-토, 맑음)

달빛사랑 2025. 1. 25. 21:15

 

종일 단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 부고 문자 두 개와 작가회의 시분과에서 보낸 공지를 제외하면 문자도 드문 하루였다. 전화받는 걸 무척 불편해하는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다만 오늘도 기침은 떨어지지 않았다. 판피린 2병과 기관지염증 치료 물약 2포를 먹었다. 상태는 분명 호전되고 있었다. 가슴께 통증이 현저하게 완화되었다. 기침을 해도 옆구리가 결리지 않았다. 더구나 대기질도 좋아서 마스크를 하지 않고 돌아다녀도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올빼미 생활을 청산하고 직장에 나가기 시작한 초기에는 6~7시쯤 일어나 시작하는 하루가 무척 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활이 5년째 접어들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데도 하루가 짧게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의미 없이 보낸 날은 더욱 그렇다. 이를테면 종일 영화나 보고 유튜브나 보면서 먹고 자고 한 날은 왜 그렇게 하루가 빨리 지나가는지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밥 먹고 운동하고 영화 보고 낮잠 자고 다시 저녁 먹고 유튜브 보다가 잠자리에 드는 루틴은 '시간을 이렇게 허투루 쓰면 안 돼'라는 죄책감 때문인지 하루가 더 빨리 흘러가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실내 자전거 위에 올라탈 때만 해도 머릿속으로 다양한 할 일들을 떠올리지만, 그걸 실제로 한 적은 별로 없다. 예를 들어 '최승자 시집을 필사해야지'라든가, '오늘은 단 한 편의 시라도 반드시 쓸 거야'라든가,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을 읽도록 하자' 등 생각은 많지만,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 습관처럼 유튜브나 영화 스트리밍 사이트를 헤매게 된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정세를 이해하려면 유튜브 뉴스를 봐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모양이다. 사실 유튜브의 정보들이 다 믿을 만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기계적으로 영상들을 검색하고 클릭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나이에 하루를 반드시 의미 있게 보내야 하는 건가? 도대체 그 의미란 뭐지?'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매일 그러는 것도 아니고 쉬는 날에만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것이 그토록 '의미 없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도 강박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모든 일에서 건강(신체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과 의미를 찾으려는 것은 휴식과 게으름, 자연스러운 풀어짐과 의도적인 태만을 동일시하는 의미지상주의자들의 결벽증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생각에 대해 게으른 사람의 변명, 자기 합리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오늘 하루도 매우 '의미 없이' 보냈는데, 다른 때처럼 깊게 후회하거나 죄스러워하지 않을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단 한 통의 전화도 받지 않은, 정말 내게는 드물게 편안했던 날이기에 그렇다. 오늘 나는 무척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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