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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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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명절을 앞두고 (1-23-목, 맑음)

달빛사랑 2025. 1. 23. 21:14

 

명절을 앞두고 생각이 많다.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나고, 연락이 끊긴 친구들의 소식도 궁금하다. 젊어서는 어떻게 무소식이 희소식일 수 있는지를 의심했으나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어쩌면 아무 연락도 받지 못한 자신의 쓸쓸한 처지를 무덤덤하게 말함으로써 자식과 지인들에게 잊힌 듯한 서운함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내 아들이 어버이날이나 명절에 전화 한 통 없을 때, 아비로서 무척 서운하지만, 그래도 어디가 아프거나 사고가 났다는 전화보다는 차라리 무소식인 게 낫다고 자위하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아무 연락이 없다는 건 일신상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니 말이다.

 

사실 나는 아들의 전화 말고는 다른 사람 전화를 별로 기다리지 않는다. 특히 나는 전화 공포증(Call phobia)이 있어 전화받는 걸 무척 힘들어한다. 필요한 정보는 문자나 카톡, 이메일로 받아보는 걸 훨씬 좋아한다. 이런 경향은 아마 엄마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강화된 대인기피증이나 혼자 보내는 시간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대인기피증이고 말은 했지만,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사람과의 만남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병적 수준까지는 아니다. 두렵거나 꺼림칙하다기보다는 귀찮다고 하는 게 오히려 맞는 말일 것이다.

 

아무튼 명절이 다가오니 여기저기서 전화와 문자가 많이 오고 있는데, 이럴 때는 문자도 전화만큼 귀찮다. 받으면 답장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자의 길이도, 내용의 수위도 상대에 따라 달리해야 하고, 많이 받은 날엔 종일 답장하느라 정신없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내가 마치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가 된 듯한 느낌인데, 실제로 밖에 나갈 일이 없다면 몇 개월이라도 혼자 지내는 데 문제없긴 하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서로를 귀찮게 하지 않는 만남에 대해서는 피하지 않는다. 피하기는커녕 맘에 맞는 친구에게는 내 쪽에서 먼저 연락하기도 한다. 다만 영양가 없고 불필요한 만남을 싫어하는 것뿐.


출근했더니 팀 주무관이 설날 선물로 대천 김과 떡국떡을 책상 위에 가져다 놓았다. 김은 명절 때마다 청에서 주는 선물 중 내가 고른 상품이다. 그런데 올해 받은 김은 양이 줄었다. 작년까지는 큰 상자에 조미김 20봉지가 들어있었는데, 올해는 8봉지가 담긴 작은 상자 2개를 큰 상자에 넣어 포장해 놓았다. 결과적으로 작년보다 4봉지가 준 것이다. 아마도 오른 물가를 반영해 제품의 양을 줄인 게 아닌가 싶은데, 상자값이 더 들겠더라.


혁재에게 전화해 어머니의 건강 상태를 물었더니 첫마디가 “별로 안 좋아요”였다. 일단 기력이 없고, 음식을 먹으면 자주 토한다고 했는데, 울 엄마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의 행적과 너무 비슷했다. 일단 노인들이 곡기를 몸에 들이지 못하면 무척 조짐이 안 좋은 것이다. 혁재는 “우리 엄마는 어디 아프면 안 돼요. 주변 사람을 너무 피곤하게 해요. 피를 말려요. 아이, 짜증 나!”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는데, 내가 “그러니 노인이지. 힘들어도 엄마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해줘라. 나중에 돌아가시면 가슴에 회한만 남는다. 너 혼자 감당하지 말고 누나나 동생들에게도 자주 들러 엄마 손이라는 한 번 더 잡아주라고 말해라. 그리고 뭔 일 생기면 나에게 전화하고”라고 말하자, “고마워요” 했다. 아직은 혼자서 화장실도 가고 토하기는 하지만 죽도 드신다고 하니 매우 심각한 상태는 아닌 듯하지만, 아무쪼록 혁재 모친이 이번 겨울을 잘 견뎌내셨으면 좋겠다.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별로) 없다. 그래서 노인은 늘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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