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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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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지금은 꽃들을 응원할 때 (3-8-금, 흐림)

달빛사랑 2024. 3. 8. 23:26

 

두 편의 영화를 보면 종일 집에 있었습니다. 이불과 후드티들을 빨아 널고 집 안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난 후 비교적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지요. 오후에 누나가 들러 전해준 말만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평화로운 하루가 됐을 겁니다. 얼마전 아우가 생일을 맞아 누나들과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그 때 나온 말이었나 봐요. 작은누나 말에 의하면, 지난 설날에 아들 수현이는 과일과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작은 집에 들렀다더군요. 아우는 수현이가 (숙부인) 자신은 물론이고 숙모와 너무 죽이 잘 맞는다며 자랑하듯 그 말을 하더랍니다.

 

혼자 사는 입장에서, 뭐, 사실 내 아들이 숙부 내외와 무척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밀려들더군요. 설 명절에 아들은 내게 선물은커녕 전화 한 통도 없었거든요. 예민한 사춘기 시절부터 자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니 이제와서 나에게 살갑지 않은 아들의 태도를 나무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서운한 건 서운한 겁니다. 또한 그걸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아우 내외의 처사도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카 수현이가 선물을 싸들고 자신의 집을 찾았을 때, 개념 있는 어른이라면 먼저 "혼자 계신 아빠에게도 명절 잘 쇠시라는 연락 드렸니?" 하고 물어봤어야 옳지 않겠어요? 

 

모든 게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더불어 사는 예의는 가족부터 지켜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남이 내게 서운하게 하는 건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가족들이 내게 서운하게 하면 그건 오래도록 상처로 남기 때문입니다. 소심하게 뭐 그런 거 가지고 서운해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환갑이 지났어도 자식의 행동거지와 관련한 일에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쉽게 울컥하는 게 아비들의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평화롭던 나의 하루가 온통 우울하게 변해 버린 거지요. 심지어는 아들에게 연락해서 지청구를 줄까 고민하기도 했다니까요. 다행히 그렇게까지 급발진하진 않았습니다. 

 

저녁 먹고 운동하면서 비로소 마음의 평정을 찾았습니다. 오후 내내 품었던 서운한 마음이 유치해 보이더군요. 그래요, 자식이 아니었다면 그런 일에 서운할 게 뭐가 있겠어요. 앞으로는 받을 사랑보다 내가 줄 사랑에 더욱 신경써야겠어요. 또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물들이나 내 주변을 아름답게 만드는 모든 것과 더욱 친절해지고 싶어요. 그리하여 일단 겨울의 흔적을 털어내고 있는 이 봄, 기지개를 켜는 꽃과 나무들에게 먼저 인사를 보냅니다. 머잖아 이곳을 온통 환희로 만들어줄 장엄하지만 사소하게 잊히는 그 모든 것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그래요. 지금은 꽃들을 응원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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