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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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 평론집, 『함께 내딛는 찬찬한 걸음』, 소명출판, 2023
학부모에 교수에 문학평론가에 정말 몸이 열 개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워킹맘의 삶을 얼마나 현명하게 감당하고 있는지 그녀를 옆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무한 감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구와 평론은 물론, 지역의 문화예술콘텐츠 생산에도 일정하게 기여하고 있는 그녀는, 그야말로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그녀가 최근 발행한 신작 평론집을 소개합니다.
제목(『함께 내딛는 찬찬한 걸음』)이 일단 맘에 듭니다. 누군가와 ‘함께’ 길을 '내딛는' 일은 소통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일(길)이고 ‘함께 가는 이들’과 연대하며 뭔가를 더불어 모색하는 길입니다. 이때의 동행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각자가 내딛는 발걸음의 보폭을 맞추는 일입니다. ‘찬찬한’이란 관형어 속에서 나는 그녀와 함께 할 동행의 성격과 겸손하지만 빈틈없는 진중함을 읽었습니다. 함께할 동반을 향한 배려와 연민까지도 느껴졌습니다. ‘찬찬한 걸음’은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마음이고 연대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신중함이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 나는 표사(뒤표지)에 올라온 류수연의 다음과 같은 글에 주목했습니다. 작가의 말일 게 분명한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①이 책에 담은 글은 이토록 뜨거웠던 지난 10년을 관통하며 성실하게 문학과 시대를 고찰하고자 했던 결과물이다. ②이 격동하는 시대 안에서 문학을 둘러싼 여러 변화를 포착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주류문학이라는 틀 바깥까지 나아가 오늘의 문학을 보다 폭넓께 사유하고자 하였다. ③어찌 보면 낡고 진부한 콘텐츠가 생생한 현장감으로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와 의미를 짚어보는 과정이기도 했다.④이를 통해 오늘의 문학이 가진 소명과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윗글에 제시된 ①~③까지의 문장은 연구자이자 평론가인 그녀가 수년간 천착해 온 평론 혹은 연구작업의 이력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관한 진술이 ④번일진대, 나는 결론이 “여전히 재확인하고 있는 중이다”가 아니라 “재확인할 수 있었다”라는, 단언적 문장으로 끝난 것이 너무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문우들에게는 동시대 젊은 평론가의 저 자신만만한 ‘확언(確言)’이 무척 큰 힘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하여, 아무쪼록 평론가 류수연은 자신이 확인했고, 독자들 앞에서 선언한 그 문학의 소명과 가치에 관한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었다는 걸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작업 속에서 증명해 주길 바랍니다. 그건 건강한 평론가의 의무입니다. 행복한 의무겠지요. 나도 '그 믿음'을 위해 더욱 열심히 고민하며 응원하겠습니다. 나는 보폭이 넓고 크진 않지만, ‘찬찬히’ 걸어갈 자신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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