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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평범한 사람들의 한 끼 (9-18-월, 전형적인 가을날) 본문

일상

평범한 사람들의 한 끼 (9-18-월, 전형적인 가을날)

달빛사랑 2023. 9. 18. 20:59

 

오랜만에 박 실장(전 비서실장)과 점심 먹었다. 이번에도  착한 보운 형이 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무심하게도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박 실장과의 약속을 기억해 냈다. (요즘 자주 깜빡깜빡한다) 보운 형은 주말에 과음했는지 내가 출근했을 때 의자에 기대 자고 있었다. 깰까 봐 조심스레 컴퓨터를 켠 후 탕비실에 들어가 녹차를 타서 자리에 앉았다. 인기척을 느낀 형이 잠깐 몸을 꿈툴, 했지만  깨진 않았고 이내 다시 잠들었다. 보운 형과 나는 공교롭게도 생일(음력 8월 3일)이 같다. 형도 아마 어제와 그제 지인들과 생일 모임을 가졌을 게 분명하다. 형이 깬 건 11시 10분, 일어나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싱긋 웃었다. "어제 약주 많이 하셨나 봐요?" 물었더니 "네, 어제 풀각시 동지들과 늦게까지 마셨어요. 만약 오늘 박 실장과의 약속만 아니었다면 안 나왔을 거예요" 했다. '아, 그래 맞아. 오늘 박 실장과의 점심 약속이 있었지' 그때서야 비로소 오늘 약속을 떠올렸던 것인데, 보운 형에게는 깜빡 잊었던 걸 티 내지는 않았다. 

 

11시 50분 정문 앞에서 박 실장을 만나 그의 차를 타고 남동희망공간 근처 '전라도 식당'에 들렀다. 아뿔싸, 오늘은 정기 휴일. 할 수 없이 근처에 차를 대고 보운 형이 강력 추천한 메밀국수와 만두를 먹기 위해 남인천세무서 앞 '두손모밀 빚은 만두 구월본점'으로 이동했다. 식당은 소문난 맛집답게 손님으로 가득했다. 다행히 주방 앞에 빈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혈당 관리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쥐약인 냉메밀국수와 만두를 (사람 숫자대로 주문해서) 배불리 먹었다. 오늘은 정말 일행들 앞에서 엄살 없이 각오하고 먹었다. 혈당 관리하기 전, 그들과 식사할 때처럼 맛있게 먹었다. 그건 일행에 대한 나만의 배려라고 자위하면 먹었다. 자리에 앉아마자 일행들 앞에서 "나는 혈당 관리 때문에 못 먹습니다" 했다면, '그런 메뉴'를 선택한 보운 형이 얼마나 미안했겠는가. 사회적 동물은 가끔 자신의 건강보다 동료의 마음을 배려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박 실장은 전에 봤을 때보다  얼굴에 살이 좀 올라 있었다. 보운 형은 라테를 마셨는데, 나도 혈당 관리를 하지 않았을 때는 늘 바닐라 라테를 마셨다. 불과 두어 달 전인데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혈당을 재봤더니, 오 마이 갓! 예상했던 대로 혈당이 215까지 치솟아 있었다. 전형적인 혈당스파이크였다. 한 시간 후에 다시 쟀을 때조차 200. 탄수화물이 얼마니 치명적으로 혈당을 올릴 수 있는가를, 나 자신을 마루타 삼아 임상실험한 형국이다. 다행히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하고 쟀을 때는 식후 1시간과 두 시간 혈당이 각각 135, 98로 지극히 정상이었다. 사실 메밀과 만두는 정상인에게도 혈당스파이크를 일으키는, 당 지수가 높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몰랐던 게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유붕 자원방래하지 않았는가. 무모했지만, 식탐을 보일 수밖에 없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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