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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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동인천에서 술 마시다 (05-31-수, 맑음)

달빛사랑 2023. 5. 31. 20:52

 

5월을 보낸다. 숨 가쁘게 달려왔다. 행사도 많고 지출도 많았으며 몸에 이상 징후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어버이날도 있었으나 나는 어버이가 생존해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으로 그리워했고 사랑 주는 것에 미숙한 아들은 내가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해 오지 않았다. 그렇게 2주일이 지난 어느 일요일 저녁 아들은 전화를 걸어 나의 안부를 물었다. 무척이나 길게 통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운했던 마음이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녹아버렸다.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직장에서는 가장 친했던 비서실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글쟁이로서의 일상을 돌아보면, 두 권의 문예지에 청탁받은 시와 서평을 각각 보냈고, 한 신문사가 주최한 글쓰기 대회에서 심사를 맡았으며, 또 다른 신문사에는 정기적으로 연재하는 칼럼을 송고했다. 가문 날씨를 자주 걱정했는데 다행히 지난주 연 3일 동안 많은 비가 내렸다. ❙물론 정치는 여전히 천박하고 민생의 피폐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권력은 전쟁놀이에 빠져 공습경보를 장난처럼 발령하고, 경찰은 검찰의 사주 아래 방송국을 압수 수색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저질 코미디에 실제로 웃음이 나오는 건 아니다. 다만 마음이 완악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코미디는 5월 탓은 아니다. 5월은 자기가 할 일을 다했다. 그러므로 나는 5월을 기꺼운 마음으로 보내주려 한다. 제 소임을 다한 계절의 뒷모습은 무척 당당한 법이다. 5월이 그러하다.❙어제 시낭송회를 끝낸 후배 은준 일행이 점심 사주겠다며 연락해 왔다. 이미 정보지원과 팀원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서 나갈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 메밀국수 먹으러 영종도에 들어갔다 나오며 다시 연락한다고 했는데, 아마도 낮술을 먹어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그 자리에는 장이 맘에 들어하는 여자 후배도 있고 또 친한 여자 선배도 있으니, 섬과 바다와 여성과 술, 어떻게 맨 정신으로 저녁까지 견디다 나에게 전화하겠는가. 사실 나도 쉬고 싶다.


퇴근 무렵, 뜻밖에도 장은 멀쩡한 상태로 진짜 전화를 걸어왔다. 영종도에서 식사하고 무의도에 들어가 차 마시고 산책하다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김 모 시인과 후배 은희, 그리고 자신의 선배와 함께 있다며 나에게 동인천으로 나오라고 했다. 사진작가 임기성이 자신이 담근 막걸리를 제공하겠다고 한 모양이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김 시인도 본 지 오래되었고 친구 기성이도 보고 싶어 동인천 '인정나라'로 가서 그들을 만났다. '인정나라'는 기성의 단골 술집이고 나도 몇 차례 가본 적이 있다. 오래간만에 동인천 참치 골목에 들렀더니 가슴이 뛰었다. 참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기성이가 담근 막걸리는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상품화해서 판매해도 될 만큼 자연스럽고 괜찮은 맛이었다. 인공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술이라서 단맛은 없었지만, 본디 단맛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문득 혁재가 생각났다. 혁재가 마셨다면 "어, 정말 좋은데요" 했을 것이다. '인정나라'에서 나온 후 기성이는 따로 챙겨놨던 막걸리 한 병을 가져가라며 건네주었다. 집이 먼 김 시인은 먼저 귀가하고 나머지 일행은 근처 젊은이들로 북적대는 퓨전 술집에 들어가 소주를 마셨다. 각 1병씩 마셨을 때쯤 기성의 아내이자 내 초등학교 후배인  Y에게서 연락이 왔다. 직접 통화해 보니, 기성이가 이전에도 과음으로 인해 아침 편의점 일을 펑크낸 적이 여러 번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술값 계산해 주고 나부터 일어섰다. "전철 끊어지기 전에 나는 일어설게" 했더니 일행들도 "그럼 다 같이 일어나요" 하며 따라나섰다. 동인천역까지 걸어와 전철을 타고 돌아왔다. ❙5월의 마지막 날, 종우 형이 빌려 갔던 돈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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