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봄날은 간다 (04-13-목, 맑음) 본문

잠깐 사이에 나의 꽃들이 모두 사라졌다. 꽃들은 내 소중한 추억 몇 개와 빛나는 시 서너 편까지 훔쳐서 달아났다. 그런데도 봄날은 천연덕스럽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결같이 평온하다. 봄은, 꽃이 내 추억과 시를 가져가든 말든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봄은 분명 마음만 바쁜 나를 기다려주지도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봄이 그러든 말든, 나에게 관심을 주든 말든 개의치 않겠다는 의사를 봄 앞에서 확실히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봄과 다툴 일이 전혀 없었는데, 꽃에게 추억과 시를 도둑질당했을 때, 봄이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아서 화가 난 거다. 그래서 나 역시 봄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마음을 속였다. 엄밀히 말하면, 아니 대충 생각해도, 추억과 시를 잃은 건 제멋대로 서둘러 피었다가 갑작스레 소리도 없이 도망간 꽃의 책임이지 봄 탓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유치한 신경전은 도대체 뭐지? 마음이 허허롭다 보니 공연히 계절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구나. 봄은 참으로 이상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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