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혁재와 로미 (2021-11-19-금, 맑음) | 본문
출근할 때부터 비정규직노조(돌봄 교사)의 시위가 예사롭지 않더니 9시쯤 결국 3층 교육감실 입구까지 노조원들이 들어와 농성을 벌였다. 바로 특보실 앞이기도 해서 화장실도 못 가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노사팀장, 노무사, 보좌관, 노조 관계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특보실에 모여 의견을 나누고 이견을 조율했다. 옆에 앉아 듣다 보니, 교육청 팀장은 일의 순서를 모르거나 노조를 믿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노조였어도 화가 났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30분가량 언성을 높이다가 노사담당 박 보좌관이 중재해서 일단 급한 불은 껐다. 이제 청에서 신뢰를 보여주면 될 일이다. 정신없던 건 그뿐만이 아니다. 벽면과 옥상 방수공사 때문에 아침부터 천공기 소리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후면 주차장은 폐쇄되어 교육청 앞은 중고차 매매센터처럼 차로 가득했다. 오늘처럼 다양한 소음으로 오전을 홀랑 보낸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살아 있으니 겪는 일이겠지만, 소음은 정말 끔찍하다. 오죽하면 층간 소음 문제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겠는가. 기계로 인한 소음이든 듣고 싶지 않은 사람의 말이든 소음은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게다가 정치인들의 말도 안 되는 소음까지 일상을 오염시키고 있으니, 그야말로 소음 지옥에 사는 셈이다.
오늘 점심은 처음 가보는 식당에서 해결했다. 보좌관 하나가 추천한 집인데, 정육점을 겸하고 있는 해장국집이었다. 먹은 메뉴 이름은 양평 장터해장국, 양도 많고 맛도 괜찮았다. 앞으로 자주 오게 될 거 같다. 일단 같이 간 일행들이 하나같이 칭찬했다. 밥값은 9천 원, 싼 편은 아니었다. 최근 먹은 점심 메뉴 중에 가장 든든한 한 그릇이었다.
날씨가 꼭 봄날 같았다. 어찌나 포근하던지. 시청과 교육청 안뜰 벤치에 식사를 마친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이후, 청사 안에 있는 벤치의 금지 케이블을 모두 철거했고 테이블도 광장에 갖다 놓았다. 오랜만에 정겨워 보였다. 이대로 코로나가 끝나고 자유로운 접촉이 가능한 시절이 빨리 왔으면 좋을 텐데, 오늘도 확진자 수는 역대급이었다. 불안과 공포를 내포한 위장된 평화로움이 의뭉스럽게 이곳에 흐르고 있다.
혁재의 연락을 받고 갈매기에 들렀다. 오랜만에 다소 수척해진 로미 씨와 있었다. 혁재는 이미 취해있었다. 그는 취하면 말이 많아진다. 다행히 기분좋게 취했는지 많이 웃었다. 자기가 객적은 농담을 던져놓고 혼자 웃기도 했다. 낯설지는 않았으나 요즘은 쉬 취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되긴 했다. 더구나 오늘은 나를 불러놓고 로미 씨와 연극을 보러 간다고 했다. 후배가 연출한 연극이 신포동 '다락'에서 공연되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토록 취한 상태에서 연극 공연을 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로미 씨는 그런 혁재의 모습을 보며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 신포동으로 향했다. 나는 남아 혼자서 술을 마셨다. '나원참, 불러 놓고 이게 뭐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혁재라서 용서가 됐다. 갈매기는 내일 개업 14주년 행사를 조촐하게 치를 예정이다. 나는 대청도 윤수 씨와 후배 화정을 만날 예정인데, 아마도 약속 장소는 갈매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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