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대학수학능력시험ㅣ스캐너를 구입하다 본문
올해는 다행히 수능 추위가 없었다. 포근한 날씨 속에서 학생들은 시험을 치렀을 것이다. 또 작년과는 달리 코로나 차단막도 사라졌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중요한 행보가 결정되는 현재의 대학입시 제도를 생각할 때, 날씨나 시험장 상황 등은 분명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적어도 올해는 시험 외적인 조건과 상황이 작년보다는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뉴스를 보다가 수능과 날씨 소식 뒤 정치 뉴스가 이어져 바로 꺼버렸다. 뻔한 이야기들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정을 거듭해온 여당이나 적폐의 본산인 야당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인물들이 나와 서로 잘났다고 공격해 대는 걸 보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라면 두 개로 아침을 대신했다. 술 마신 다음 날이면 항상 라면을 먹게 된다. 건강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라면을 끊지 못하는 건 내가 그만큼 짠맛에 길이 든 것이다.
아침에 잠깐 졸다가 점심 때쯤 처방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1시 20쯤에 도착했는데, 간호사들이 식사 중이었다. 관공서의 점심시간은 12시부터라서 아무 생각 없이 1시를 넘겨 방문한 것인데, 이곳은 1시부터 점심시간이었다. 기다리기 뭐해서 병원을 나와 주변을 산책했다. 아파트 주변 산책로를 따라 걸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장관이었다. 일부러 나무 밑에 서서 은행잎을 온몸으로 맞아보기도 했다. 아파트 경비들은 휴대용 송풍기를 등에 메고 연신 떨어진 나뭇잎을 한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정확히 2시 다시 병원을 찾았더니 이미 내원객들이 로비에 그득했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러 온 노인들이었다. 오늘 혈압은 120에 80, 지극히 정상적으로 나왔다. 다행이었다. 주치의는 “혈압 좋네요. 독감 예방주사는 맞았어요? 안 맞으셨으면 맞도록 하세요.” 했는데, 나는 고개를 까닥하고 대답하진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달걀과 두부, 콩나물을 사 왔다. 집 근처 신포순대에 들러 순댓국도 한 그릇 포장해 왔다. 안 가는 사이 천 원이 올라 8천 원이었다. “가격이 올랐네요.” 했더니, 계산하던 종업원은 “예, 지난 8월 4일부터 올랐어요. 재료비가 워낙 올라……”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도 아닌데 미안할 필요가 뭐 있을까’ 속으로 생각했다.
책을 읽다가 자주 눈이 침침해져 결국 오버헤드형 스캐너를 구매했다. 물론 평판 스캐너가 있긴 한데, 오래전 모델이라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책을 스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참 검색하다가 30만 원대 중저가 모델이 있어 덜컥 구매했다. 사용 후기도 괜찮았고, 비교적 최근 모델(2020년 4월)이었으며, 무엇보다 다른 모델들이 50~60만 원대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5초에 한 장을 스캔할 수 있다는데, 그렇다면 300쪽 분량 책 한 권을 스캔하는 데는 10~15분가량 걸릴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일단 발 페달이 있어서 스캔할 때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이제 기존의 책들도 스캔한 후 pdf로 만들어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전자책을 구매할 예정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나이를 먹었나 하는 생각에 서글프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날이 갈수록 더할 텐데, 감수하면서 살아야지. 다행히 문명의 이기들이 신체적 핸디캡을 보완해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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