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엄마의 손ㅣ그는 연락하지 않았다 본문
엄마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혹이 난 것처럼 흉하게 뒤틀어져 있었다. 한동안 괜찮았는데 최근에 다시 심해졌다. 오랜 노동의 후유증이라고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지만 그걸 보는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유소년 시절을 풍족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손가락 마디가 변형될 정도로 엄마가 험하고 힘든 노동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을 건사한 대가치고는 너무나도 슬프고 모질다. 그 혹 속에는 젊은 시절 엄마의 꿈과 눈물과 땀방울과 한숨이 모두 깃들어 있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울음소리가 들릴 것 같고 노랫소리도 들릴 것 같다. 흙 속에 손가락을 넣으면 싹이 트고 가지가 나고 잎이 무성해질 것만 같다. 안쓰러운 엄마.
오랜 세월 베트남에서 칩거하듯 지내다 귀국한 한 친구를, 며칠 전 우연히 갈매기에서 만났는데, 그때 그 친구는 오늘 나에게 연락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모양이다. 반가움과 민망함은 결이 다른 감정일 테니까. 그의 ‘아홉 켤레의 구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에게도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다려줄 생각이다. 그가 마음을 열 때까지, 뜻밖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나의 환한 표정과 반가움이 시간의 치유력이 작용하긴 했지만, 위장된 감정이 아니라 나의 진심이라는 것을 그가 알아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줄 생각이다.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을 시간이 치료해주었듯이 앞으로의 관계와 그 성격에 대해서도 시간은 차근차근 치유해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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